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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연애도 19금? 10대의 심장은 소리죽여 뛴다

등록 2010-02-21 18:49수정 2010-02-21 21:02

영화 ‘회오리바람’
영화 ‘회오리바람’
새 영화 ‘회오리바람’
‘인생 유예기간’ 십대들에게 보낸 위문편지
감독 경험 담아 전하는 “문제아라도 괜찮아”




10대의 사랑은 금기인가. 영화 <회오리바람>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다’고 답한다. 금기의 영역을 건드리는 <회오리바람>은 그런 의미에서 사랑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뼈저린 성장 영화다. 또한 인생의 모든 환희를 대학 입시 이후로 유예한 채 억눌린 삶을 살아야 하는 십대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이자,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를 향한 통렬한 야유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가슴 아픈 주제를 시적인 이미지로 연출해낸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장건재(33) 감독
장건재(33) 감독
■ 너 내 딸 건드렸어, 안 건드렸어? 고2 겨울방학. 태훈(서준영)과 미정(이민지)은 연애 100일을 기념해 강원도 속초로 여행을 떠난다. 집에 알리지 않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기에 양가 부모들은 발칵 뒤집어진다. 미정이 아버지의 관심사는 가출 자체가 아니라 딸의 순결 여부와 대학 입시다. 치과대학 출신임을 은근히 자랑하는 미정의 아버지는 태훈과 태훈의 부모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놓고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명문대학 출신이다, 하면은 90%는 인생이 결정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태훈에게 어디서 잠을 잤는지 자술서를 쓰도록 하고, 미정의 그것과 대조하고 추궁한다. 급기야 골프채를 휘두르며 “(미정에게) 너 그렇게 살면 창녀가 되는 거야! 이 개같은 년아! (태훈에게) 너 내 딸 건드렸어 안 건드렸어?”라고 속내를 꺼내고 만다.

■ 나이도 어린 것들이 사랑은 무슨 사랑? 유사 이래 수많은 픽션들이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했지만, <회오리 바람>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들의 얼굴이 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성인들의 사랑 얘기로 착각하곤 하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판소리 <춘향전>은 10대들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사랑의 장애물은 나이가 아니라 집안끼리의 반목이나 신분 차이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조건도 변했다. 아,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이가 어려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니.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건 미래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돈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속초에서 서울로 올라올 차비가 떨어진 태훈과 미정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린다. 태훈의 엄마는 전화 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태훈의 휴대폰을 빼앗아버린다. 피시방에서 태훈은 돈 900원이 모자라 피시방 사장에게 얻어맞고 신발까지 빼앗긴다. 독립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태훈은 중국집 배달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실상 심신 부자유 상태의 청소년이 돈을 벌어 재산을 모으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영화 ‘회오리바람’
영화 ‘회오리바람’
■ “문제아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 <회오리바람>은 장건재(33·사진)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서인지 세부 묘사가 뛰어나다. 가스와 피자 배달 말고는 안 해본 배달이 없다는 장 감독은 자신의 “10대와 이별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며 “씻김굿을 하고 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생각날 때마다 가고, 집에 들어가는 날보다 밖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던 문제아는 방황의 끝에 ‘문화학교 서울’(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을 만나 출구를 모르고 헤매던 열정의 대상을 찾았다. 그는 “학교 가면 맨 뒷줄에 앉아서 잠만 자다 가는 친구들한테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며 “지독한 학벌주의 사회에서 선택의 폭이 좁기는 하겠지만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는 10대 후반의 자식을 둔 부모들이 굉장히 불편해할 영화”라며 “하지만 10대도 사람이고,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모들만 모를 뿐”이라고 덧붙였다. 캐나다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신인감독 부문 대상) 수상. 25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스틸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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