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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산송장 운명’ 인도 과부들의 눈물 훔치다

등록 2010-02-25 09:08수정 2010-02-25 16:35

인도영화 <아쉬람>의 한 장면
인도영화 <아쉬람>의 한 장면
인도영화 공식 깬 ‘아쉬람’
‘고려장’ 다름없는 관습…힌두교 가르침에 ‘정면 도전’
원리주의 힌두교도 폭동에 스리랑카로 옮겨 촬영 마쳐
갠지스강은 북부 인도의 젖줄. 우타르프라데시, 비하르, 서벵골 주를 관통하며 갠지스 평야를 거느리고 2510㎞를 흘러 벵골만으로 유입한다. 인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97만5900㎢의 유역에는 5억 인구가 기대어 산다. 강 중류에 아주 오래된 도시가 있으니 바라나시가 그것이다.

힌두교의 성지. 신자들은 그곳 갠지스에서 생의 업을 씻고 죽어서도 강물에 뿌려지기를 소망한다. 기슭에는 목욕 계단이 수십㎞에 이르며 수백개의 사원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아쉬람, 즉 수행 공동체도 있을 터. 거기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 영화 <아쉬람>이다.

갠지스는 수천년 변함없이 흐르지만 기대어 살아온 인간들은 빈부가 생기고 그것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계급이 되었다. <아쉬람>이 찾아간 곳은 1930년대 말 ‘미망인’들이 모여 사는 ‘다르마 가트’. 죽은 남편의 화장터나 묘에서 분신하거나 가족의 동의 아래 시동생의 아내가 되지 못한 과부들이 세상과 등진 채 수행하며 사는 곳. 말이 수행이지 종교의 이름을 빌린 ‘고려장’. 가난한 집에서는 입 하나 덜자는 거고 부잣집에서는 재산을 나눠주기 싫은 까닭이다. 이들은 적선으로 연명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매음이다. 고객은 주로 돈 많은 브라만계급.

아쉬람에는 보스 격인 뚱보 왕언니 마두 디디, 어릴 적 단과자의 추억만 남은 파트라지, 봉사와 수행을 계속하는 브라만 출신의 샤꾼딸라, 매음으로 이들을 먹여 살리는 18살 청춘 깔랴니 등 10여명이 산다. 살아도 산 게 아닌 이곳에 새로 들어온 8살 과부 쭈이야는 생짜배기 천방지축. 과부는 반 죽은 게 아니라 ‘반은 살아 있다’고 말하고, 과부집은 있는데 홀아비 집은 왜 없는가를 묻는다. 매음을 강요하는 마두 디디의 앵무새를 죽이고, 치매노인 파트라지의 소원인 단과자를 사오고, 도 닦는 샤꾼딸라로 하여금 “경전은 과부를 학대하라고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게 만든다. 또 깔랴니와 젊은 법학도 나라얀 사이에서 사랑의 메신저가 된다.

인도영화 <아쉬람>의 한 장면
인도영화 <아쉬람>의 한 장면

부조리 덩이인 아쉬람에 빛을 비추는 게 쉽겠는가. 촬영팀은 2000년 바라나시 로케 이틀 만에 벽에 부닥쳤다. 엄격한 힌두교 교리와 여성의 실상을 드러내는 데 분개한 힌두 원리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 정부군 300여명의 호위를 받았지만 시위대 한 명이 갠지스강에 투신하면서 작업을 접었다. 촬영은 5년 뒤 스리랑카에서 재개된다. 대형 세트장에서 제목을 위장한 채.

여성 감독 디파 메타는 인도인 어머니를 둔 캐나다인이고 돈줄 역시 캐나다. 이 정도나마 접근한 것도 그 탓이다. 그의 작품은 ‘마살라 영화’, 즉 영웅과 미녀 주인공과 클라이맥스에서 춤과 노래가 나오는 정통 인도영화와 완전히 다르다. 권선징악, 해피엔딩의 문법도 버리고 과감하게 골치 아픈 주제와 맞닥뜨린다. 전작 <파이어> 역시 종교적 금욕주의와 사랑 없는 결혼에 얽매인 인도 여성의 삶을 그렸고 개봉 때 극장과 관객이 폭도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전언.

“2001년 인구 조사를 따르면 인도에는 3400만명을 넘는 과부가 있는데 그 대부분이 2000년 전에 쓰인 마누 법전의 가르침을 따라 지금도 사회, 경제, 문화적인 결핍 속에 살고 있다.” 막판 자막은 감독의 변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 맛들인 팬한테는 맹맹, 식상한 팬한테는 시원한 청량제. 25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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