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선구자 ‘베오울프’ 아쉬운 몸값
허지웅의 극장뎐 / 육감계의 보고, 크리스타 알렌이 열연한 <뉴 엠마뉴엘>은 입체영화였다. 삼촌이 시켰다고 거짓말하고 빌려보았는데 500원을 더 내고 받아온 편광필터 안경을 쓰자마자 마징가에 올라탄 쇠돌이의 마음이 되어 당장이라도 북괴를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튀어나오는 건 몸뚱이가 아니라 화분이었다. 이후 나는 입체영화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품고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정말 청문회 속 5공보다 입체영화가 더 싫었다.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 이후 입체영화가 대세로 떠올랐다. 사회자의 “아바따” 발음과 영진위 위원장의 도무지 불필요한 출연이 인상적이었던 <100분 토론>에서도 바야흐로 영화 역사는 <아바타>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민케인>도 3디(D) 입체영화로 리마스터링 할 것 같은 이 우주적인 물결의 와중에 유독 떠오르는 불행한 감독 하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이름 로버트 저메키스다. 사실 할리우드에서 저메키스만큼 3디 입체영화에 모든 걸 바치고 저력과 성과를 쌓아온 감독도 드물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그는 <포레스트 검프>와 <콘택트>, <왓 라이즈 비니스>를 거쳐 <캐스트 어웨이>를 마지막으로 2디 영화와 결별했다. 이후 <폴라 익스프레스>를 3디 버전으로 바꿔 재개봉하더니 <베오울프>는 아예 제작 단계에서부터 3디 입체 상영을 전제하고 만들었다. <베오울프>는 말 그대로 획기적이었다. 그 안에서 입체기술은 놀이공원의 유흥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였다. 결코 기술로써 과잉되지 않고 영화 전반의 호흡과 서사에 맞추어 유기적으로 선보여졌다. 영화 상영 내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베오울프>를 통해 비로소 <뉴 엠마뉴엘>의 입체화분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기술이 아닌 영화 문법으로서의 첫 번째 3디 입체영화는 두말할 것 없이 <베오울프>다. <아바타>의 입체기술이 <베오울프>만큼 ‘영화적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아바타> 이후의 입체영화 찬양 안에 그의 이름은 빠져있다. <아바타>와 며칠 차이로 선보인 <크리스마스 캐롤>의 부진도 한몫을 했다. 사실 <아바타>에 비교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안일한 기획이기는 했다. 입체 스크루지라니! 저메키스와 캐머런을 보면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 같다. 흡사 ‘원기옥’(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생물체들의 기를 모아 쏘는 기술)을 완성한 크리링 앞에 나는 아직 변신할 게 남았다고 여유 있게 말하는 프리더를 지켜보는 독자의 심정이랄까. 타고난 재능 앞에 노력하는 자는 그저 초라할 뿐. 비극이다. 이제 와 누가 로버트 저메키스를 3디 입체영화 진영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기억한단 말인가. 기껏해야 <백 투 더 퓨쳐>나 <포레스트 검프>의 감독으로,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스필버그 친구로 추억될 뿐이니. 에잇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저메키스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본다.
허지웅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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