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새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남아공 넬슨 만델라 통합 정치 그린 실화
럭비경기와 스포츠 엮어 용서·화합 메시지
남아공 넬슨 만델라 통합 정치 그린 실화
럭비경기와 스포츠 엮어 용서·화합 메시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께.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지난해 3월 <그랜 토리노> 한국 개봉 때 보낸 편지(<한겨레> 2009년 3월5일치 16면) 잘 받으셨나요. 답장이 없는 걸로 봐서 읽지 않으신 것 같지만, 그래도 또 씁니다. 당장 뭐라도 적어야 흥분이 가라앉을 것 같아요. 방금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3월4일 개봉) 시사회에 다녀왔거든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실제 이야기라서일까요? 만델라 역의 모건 프리먼 할아버지가 예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용서와 화해를 말할 때 눈시울을 붉힌 것은 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경호실에 백인 경호원들을 배치하자 흑인 경호인들이 반발하는 장면에서 만델라가 이렇게 말하잖아요. “공개 석상에서 국민들은 나뿐만 아니라 내 경호원들도 보네. 흑백 통합의 무지개 국가, 화해의 시대가 시작되는 걸세…. (중략) 용서는 영혼을 해방시키고 공포를 없애주지. 그래서 강력한 무기인 걸세.”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된 상황에서 저는 크게 한번 울컥합니다. 영화 속에서 맷 데이먼이 말한 것처럼 “27년 동안 자신을 가둔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백인들의 전유물이자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이었던 럭비팀 ‘스프링복스’의 명칭과 유니폼을 바꾸기로 한 체육위원회의 결정을 비판하는 만델라의 연설은 또 어떻습니까? “그들은 스프링복스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걸 빼앗으면 그들을 잃습니다. 그들이 우려한 대로 치졸한 복수를 한다고 보여질 뿐이지요. 그들을 놀라게 해줘야 합니다. 연민과 자제력과 관대함으로….”
그렇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용서와 화해입니다. 감독님이 연출을 수락한 이유도 바로 이 주제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빅터스>의 주제는 <그랜 토리노>의 주제였던 배려·희생과 더불어 한국 사회를 위해 특별 제작한 각성제 선물 세트처럼 느껴집니다.
감독님! 지난번에 제가 영화로 유언장 쓰셨나고 물었잖아요. 그런데 이거 큰일입니다. 감독님 영화는 이제 죄다 유언장으로 보이네요. 다음 영화 <히어애프터>도 죽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야기를 다룬 초자연물이라니, 역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것 같군요. 그래도 건강한 모습으로 1년에 1편씩 꼬박꼬박 만드시는 걸 보니 제가 다 기분이 좋습니다.
<…인빅터스>가 ‘정치’만을 다뤘다면 마음이 이렇게 크게 흔들리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가족주의와 연애담으로 대충 버무린 스포츠 영화라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영리하게도 정치와 스포츠를 하나로 엮은 건 신문기자 출신의 원작자 존 칼린의 공으로 돌려야겠지요. 하지만 감상적인 클로즈업을 자제하고 기존 할리우드 스포츠영화와 다른 길을 간 것은 분명 감독님의 결정이었겠지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감동은 럭비 장면보다 만델라의 연설에서 더 크게 다가옵니다. 만델라는 스포츠를 정치에 활용하는 히틀러의 수법을 빌려와 전쟁이 아닌 평화에 기여했습니다.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겁니다. 만약 흑인 정권이 스프링복스의 유니폼을 빼앗았다면 흑백갈등은 더욱 심해졌겠지요. 영화는 총체적 예술이고, 그만큼 앙상블이 중요한데, 감독님 영화는 언제나 그 점이 훌륭합니다. 영화를 처음부터 기획했고, 총제작을 맡은 모건 프리먼은 진짜 만델라를 보는 듯했습니다. 스프링복스 주장 역의 맷 데이먼은 진짜 럭비를 해도 되겠더군요. <본> 시리즈의 날렵함은 어디에 던져두고 그렇게 튼실한 몸을 키웠는지. 남아공 영어의 어눌한 억양도 실감났다고 전해주세요. 감독님 아들, 카일 이스트우드의 음악도 잘 어울렸습니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검은 손과 흰 손이 함께 잡은 우승 트로피를 보며 저는 왼손과 오른손이 함께 잡은 우승 트로피를 상상해 봤습니다. ‘한국의 만델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용서와 화해라는 큰 가르침을 주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금 한국은 분열과 배제, 복수와 대결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고 있지요. 혹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영화 좀 보라고 전화 한통 해주시면 안 되나요? ㅎㅎ 감독님, 부담 갖지 마시구요. 좋은 영화 선물해주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럼 내년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추신: 인빅터스는 ‘굴복하지 않는’이라는 뜻의 라틴어라면서요. 만델라가 감옥에서 즐겨 암송했던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제목이기도 하고요. “어떤 지옥의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외유내강의 품격을 지닌 만델라에게 잘 어울리는 시입니다.
새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인빅터스>가 ‘정치’만을 다뤘다면 마음이 이렇게 크게 흔들리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가족주의와 연애담으로 대충 버무린 스포츠 영화라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영리하게도 정치와 스포츠를 하나로 엮은 건 신문기자 출신의 원작자 존 칼린의 공으로 돌려야겠지요. 하지만 감상적인 클로즈업을 자제하고 기존 할리우드 스포츠영화와 다른 길을 간 것은 분명 감독님의 결정이었겠지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감동은 럭비 장면보다 만델라의 연설에서 더 크게 다가옵니다. 만델라는 스포츠를 정치에 활용하는 히틀러의 수법을 빌려와 전쟁이 아닌 평화에 기여했습니다.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겁니다. 만약 흑인 정권이 스프링복스의 유니폼을 빼앗았다면 흑백갈등은 더욱 심해졌겠지요. 영화는 총체적 예술이고, 그만큼 앙상블이 중요한데, 감독님 영화는 언제나 그 점이 훌륭합니다. 영화를 처음부터 기획했고, 총제작을 맡은 모건 프리먼은 진짜 만델라를 보는 듯했습니다. 스프링복스 주장 역의 맷 데이먼은 진짜 럭비를 해도 되겠더군요. <본> 시리즈의 날렵함은 어디에 던져두고 그렇게 튼실한 몸을 키웠는지. 남아공 영어의 어눌한 억양도 실감났다고 전해주세요. 감독님 아들, 카일 이스트우드의 음악도 잘 어울렸습니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검은 손과 흰 손이 함께 잡은 우승 트로피를 보며 저는 왼손과 오른손이 함께 잡은 우승 트로피를 상상해 봤습니다. ‘한국의 만델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용서와 화해라는 큰 가르침을 주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금 한국은 분열과 배제, 복수와 대결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고 있지요. 혹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영화 좀 보라고 전화 한통 해주시면 안 되나요? ㅎㅎ 감독님, 부담 갖지 마시구요. 좋은 영화 선물해주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럼 내년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추신: 인빅터스는 ‘굴복하지 않는’이라는 뜻의 라틴어라면서요. 만델라가 감옥에서 즐겨 암송했던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제목이기도 하고요. “어떤 지옥의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외유내강의 품격을 지닌 만델라에게 잘 어울리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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