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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피도 눈물도 색 바랜 ‘갇힌 수컷들의 정글’

등록 2010-03-08 13:53수정 2010-03-08 13:54

피도 눈물도 색 바랜 ‘갇힌 수컷들의 정글’
피도 눈물도 색 바랜 ‘갇힌 수컷들의 정글’
새 영화 ‘예언자’
감옥서 거물로 거듭나는 애송이 아랍계 청년 그려
‘대부’ 명맥잇는 범죄물…골든글로브 후보작 올라
감옥은 연극이나 영화의 매력적인 배경이다. 외부의 우수리가 소거되고 인간 군상이 돌출하여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기에 맞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면회나 외출의 형식으로 바깥과 연결되면서 주인공의 행로를 설정하고 엑스트라의 출몰로써 스토리를 엮어나가기에 제격이다. <예언자>는 성공적인 감옥형 범죄영화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전범이다.

■ 스승과 제자 영화는 보잘것없는 비행청년 말리크 엘 제베나(타하르 라힘)가 6년 징역살이를 하면서 암흑가의 두목으로 커가는 과정이다. 몸으로 부닥치는 감옥에서의 스승 자격은 대저 배짱과 짬밥. 배짱으로는 암흑계의 대부 격인 세사르 루치아니(닐스 아레스트뤼프). 어리버리한 탓에 밀고자를 제거하는 하수인으로 발탁된 것을 계기로 말리크는 보스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면서 냉혹한 보복과 뒤통수치기를 전수받는다. 짬밥 스승은 글자를 깨우쳐주고 출옥해서는 외부 사업의 끈이 되어준 리야드, 마약 사업에 발을 끌어들인 조르디와 이를 업그레이드시켜 준 브라힘 등.

■ 아랍인과 코르시카인 감옥은 인종 전시장. 영화 속 감옥의 수감자들은 코르시카계와 아랍계가 양대 산맥을 이루어 각각 에이(A), 비(B)동으로 나뉘어 수감돼 있다. 코르시카인들이 소수이면서도 감옥의 패권을 차지해 각종 편의를 누리는 반면 다수의 아랍계는 구심점이 없어 차별 대우를 받는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영화 속의 이러한 형편이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갈등은 복도와 운동장에서 맞닥뜨리면서 표면화하고, 아랍계 말리크가 에이동에 들어와 코르시카인들의 밑씻개가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집단 이감으로 수감자들의 민족 간 힘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것도 구성의 큰 요소다.

피도 눈물도 색 바랜 ‘갇힌 수컷들의 정글’
피도 눈물도 색 바랜 ‘갇힌 수컷들의 정글’

■ 흑백과 컬러 감옥은 컬러가 배제된 곳. 외부의 빛이 차단되어 창살 속 좁은 방들은 무채색이고 갇힌 자들의 형편이나 미래 역시 흐릿한 불투명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말투가 컬러풀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각적 배경이 한몫을 한다. 옥중에서 피살되는 아랍계 수감자 레예브가 뿜어내는 피가 유난히 붉은 것이나 잠깐 외출로 경험하는 바깥공기가 투명하게 아름다운 것도 같은 경우다. 흑백-컬러의 대비는 소리로도 반복된다. 외출 때 들은 아침 새소리와 바닷가 파도소리는 컬러, 독방에 갇혀 40일 동안 듣는 자신의 발소리는 흑백에 해당한다.

■ 처음과 끝 6년 수형의 시말은 눈빛과 걸음걸이에서 섬세하게 드러난다. 감방용품을 안고 입감할 때의 겁에 질린 표정, 살인을 한 뒤의 멍한 눈빛에 꺼덕거리는 걸음걸이, 대부의 뒷배를 얻은 뒤의 심드렁함, 마약 판매로 자기 사업을 하면서 커지는 동공과 목소리, 보스한테 개돼지 취급을 받고 복수심으로 타오르는 눈동자는 국면의 상황을 반영한다.

압권은 출감할 때의 득의양양 팔자걸음. 꽁지 빠진 수탉 신세로 전락한 세사르의 허랑한 눈빛과 대조된다. 두 주연배우 타하르 라힘과 닐스 아레스트뤼프의 명민함.

■ 사슴과 비행기 영화는 순교자 코드를 예언자라는 말에 은근슬쩍 눙치고 있다. 말리크한테 살해된 레예브는 순교자. 밀고자라는 접두어는 범죄 세계가 부여한 칭호일 뿐이다. 살해된 다음 말리크의 꿈에 사슴으로 나타나거나 말리크가 점점 아랍인을 위한 아랍인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증거. 레예브는 말리크가 죽음의 위협에 노출됐을 때 진짜 사슴이 되어 로드킬 당하면서 이를 입증한다. 예언자는 순교자의 또다른 이름이다. 감독의 이러한 유희는 조금 더 있다.


이러한 겹겹 특장으로 <예언자>는 명작 <대부>와 동급으로 꼽히면서 지난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런던영화제 대상을 받았고, 올해에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11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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