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리틀 디제이’
새 영화 ‘리틀 디제이’
시각공해 시대. 소리는 향수를 부른다. 일본 영화 <리틀 디제이>는 마음의 창을 두드려 30여년 전 기억들을 환기시킨다. 오로지 라디오를 통해 신청곡과 사연을 주고받던 시절. 화자는 새벽 3시 음악 프로그램의 여성 피디인 타마키(히로스에 료코). 지금은 신청곡이 없어 청취자 엽서를 스스로 만들어 방송한다. 존폐의 갈림길에서 몹시 맘이 아프다. 영화는 화자를 따라 1977년 어느 날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오른다. 같은 또래의 소년 타로(가미키 류노스케)가 하코다테의 작은 병원에 입원했던 때. 타로는 점심시간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선율을 따라 방송실에 들렀다가 디제이를 맡게 된다. 신청곡과 사연을 주고받으면서 작은 병원은 즐겁고 유쾌한 공간으로 바뀐다. 애인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던 진폐증 광부, 고맙다는 말을 놓쳐 서먹해진 부자, 외롭다는 말이 안 떨어져 정말 외로운 노파 등 입원 환자들의 마음을 연다. 어린 타마키(후쿠다 마유코)와 타로는 같은 병실을 쓰게 되면서 역광과 흐린 윤곽으로 대표되는 아련하고 풋풋한 사랑을 하게 된다. 엘피판 가득한 방송실, 두 사람을 뒷자리에 태운 옛날 버스, 필름에 비가 내리는 영화관 등 재현된 기억에 매료되다 보면 영화의 백미인 소리를 놓치기 십상이다.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온 노처녀 타마키가 타로의 방에서 듣는 하코다테 항의 뱃고동 소리 같은 소소한 것들에 귀 기울여 보라. 멜로드라마의 단골인 소낙비와 백혈병이 등장하지만 흠이 되지 않는다. 그것조차 황순원의 명작 단편 <소나기>를 연상시키기 때문. 11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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