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35) 감독
‘의형제’ 500만 앞두고 만나니
관객 가려운 곳 긁어주는 영화계 ‘핀치 히터’로
빨리찍기? “스승 김기덕 감독님 비할 바 못돼”
관객 가려운 곳 긁어주는 영화계 ‘핀치 히터’로
빨리찍기? “스승 김기덕 감독님 비할 바 못돼”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외인부대가 많은 한국 영화계에서도 장훈(35) 감독은 색다른 풍경에 속한다. 대개의 비전공자들이 자기만의 이야깃거리를 갖고 영화계에 들어오는 데 반해, 장 감독은 다른 사람의 원작을 각색하고 연출한다. 김기덕이라는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한 작가 감독 아래서 영화를 배운 그가, 흡인력이 강한 대중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스승의 장점만 취했다고 할까? 순제작비 6억5000만원의 저예산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로 13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던 장훈 감독의 두번째 영화 <의형제>가 이제 막 관객 500만명을 넘보고 있다. 장 감독을 만나 ‘2연타석 홈런’을 친 소감과 비결을 물었다. -곧 500만명이다. 소감은?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제일 좋다. 신인 감독이 한 작품 찍고 못 찍는 경우가 많지 않나. <영화는 영화다>는 ‘이 작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찍었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은 사실상 비정규직인데, 세편까지 찍게 되면 영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장훈 감독이 세번째 영화를 찍게 됐다는 소식은 <의형제>가 한창 상영중이던 이달 초에 들려왔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박상연 작가가 쓴 전쟁 드라마 <고지전>을 그가 각색하고 연출한다. -빨리 찍기로 유명하다. 비결이 있나?
“김기덕 감독님(그는 ‘님’자를 빠뜨리지 않았다)에게 배운 것이다. 나는 감독님에 비해 되게 느리게 찍는 거다. 감독님은 어떤 영화의 경우 12회차, 13회차에도 찍는데, 나는 <영화는 영화다>를 26회차에 찍었으니, 두배나 찍은 거다. <의형제>는 70회차에 찍었다.” -김기덕 감독에게 영화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감독님의 작품 세계에 매료됐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 학교에 강연하러 오셨을 때 끝나고 인사를 드렸더니 메일 주소를 알려주셨다. 메일로 가끔 연락하다가 졸업하고 나서 영화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처음 했던 게 <사마리아> 연출부. 끝나니까 물으셨다. ‘어때? 해볼 생각 있어?’라고. 그리고 <빈집> <활> <시간> 조감독을 했는데, 작품 끝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하셨다.” -장 감독의 영화는 김기덕스럽지 않다. <영화는 영화다>의 라스트신 정도가 예외다. <의형제>의 해피엔딩에서는 스승과 거꾸로 가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졌다. “내가 감독님을 흉내낸다고 해도 그런 척하는 게 되는 거다. 그냥 솔직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김기덕 감독님과 다른 걸 보여주겠다기보다는 오히려 닮고 싶은 생각이 크다. 감독님은 연출자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작가신데, 나는 아직 작가는 아니니까. <의형제>를 해피엔딩으로 끝낸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나 <쉬리> 등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10년이 지난 뒤에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다>와 <의형제> 모두 “운이 좋아” 장 감독의 생각대로 캐스팅이 이뤄졌다. 소지섭과 강지환, 송강호와 강동원, 모두 다른 배우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장 감독은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연출로 배우들의 특징을 귀신처럼 잡아낸다. 빨리 찍기의 달인이면서 대중들의 코드를 잘 읽어내는 장 감독은 불황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타점 높은 핀치 히터 같은 존재다. 본인이 이야기꾼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영상언어와 호흡에 대한 이해가 탁월한 차세대 감독이 출현한 것이다. 그의 세번째 영화가 기다려진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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