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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스파이라 매도당한 분단 지식인의 수난일기

등록 2010-03-14 18:08

송두율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송두율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7년 전 한국사회 이념전쟁 주인공 된
송두율 교수의 귀국~구속~출국 담아




2003년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았던 송두율 사건의 백서가 나왔다. <경계도시 2>. 책이 아닌 여성감독 홍형숙씨의 다큐멘터리다. 상영시간 104분 내내 옛 상처를 헤집는 고통. 당사자와 홍 감독의 긴 아픔에 비길까만. 애초 3주면 될 촬영이 10개월로 늘어났고, 그것을 편집해 공개하기까지 다시 6년이 흘렀다.

송두율부터 소개하자. 1944년생인 그는 1967년 서울대 철학과 졸업 뒤 독일에 유학해 1972년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를 받아 철학박사 학위를 땄다. 1982년 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1994년부터 베를린 훔볼트 대학 교수로 재직해 왔다. 60~70년대 유신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재독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 됐다. 내재적 북한 접근론은 통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4년에는 김일성 주석 장례식에 참석한 바 있다. 현재 독일시민권자.

그럼 송두율 사건이란? 2003년 9월22일 37년 만에 입국해 2004년 8월5일 출국할 때까지 10개월 동안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국정원에 네 차례, 검찰에 아홉 차례 소환되는 조사를 거쳐 입국 한달 만에 구속됐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이듬해 3월, 징역 15년 구형에 7년이 선고됐고 7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났다. 검찰의 두툼한 공소사실 가운데 1992년 5월부터 5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것과 황장엽을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내용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제 영화 얘기다. 카메라는 송두율의 입국부터 출국까지 동행한다. 정작 그를 국가보안법으로 재단한 국정원, 검찰, 법원 등 국가 기관에는 언감생심, 주변만 뱅뱅 돈다. 그게 영화의 핵심이자 아픔이다.

국정원 3차출두(2003년 9월24일)

기자: 국정원 쪽에서 피의자라는 얘기를 하던가요? 처음에는 피내사자라고 해서 단지 조사를 받는 것뿐이라고 얘기됐는데….


송두율: 그래요? 난 차이를 잘 모르겠네요.

선친묘소(9월28일)

송두율: 67년 유학 떠날 때, 아버님은 세계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 더 우리 민족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과정을 아버님께서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송두율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송두율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기자회견 준비(10월2일)

정정희(송두율의 아내): 내가 경계인으로 살았고, 북쪽의 관계로 남쪽과는 소원해졌다. 그러나 경계인이라는 내 입장은 분명하다.

변호사: 현재 입장이 경계인이라는 건 좋은데, 그 입장에 비췄을 때 과거의 부분들이 수긍이 안 된다는 거죠.

기자회견 뒤(같은 날)

기자: 노동당을 가입한 것으로 볼 때 이미 북한이라는 체제를 선택하신 걸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계인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 보구요.

텔레비전 뉴스(같은 날)

정형근(한나라당 의원): 정부의 핵심 세력에서 송두율씨를 위장 입국시키고 컨트롤하고 미화 찬양시키고, 이런 핵심 세력을 찾아내는 것이 이 사건의 열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서강대 철학자대회 만찬(10월10일)

기자: 오늘 전향을 권유하셨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박홍: 사오로가 바오로가 되는 것이 변화를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했던 사오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바오로가 됐잖습니까? 전향 이상이지, 흐흐.

수유동 숙소(10월11일)

정정희: 추방당하면 슬픈 얘기지만 저희가 받아들이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개씨: 추방당한 다음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추방도 못 당한 사람들.

서울지방법원 앞(12월2일)

행인 1: 아니 간첩 새끼가 민주인사야? 쉽게 얘기해서 김일성 동조세력이라 이거예요. 중죄로 다뤄야 돼.

행인 2: 그냥 북한으로 보냈으면 좋겠어. 김정일하고 살라고.

오두방정 호들갑 10개월, 그리고 까무룩한 침묵. 4년 뒤인 2008년 4월 대법원은 2심에서 유죄에 포함됐던 독일 국적 취득 뒤의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한국 사회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가?” 영화는 그렇게 묻는다. 18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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