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 디 에어〉
허지웅의 극장뎐 / 여기, 삶의 관성에 도전장을 내민 남자가 있다. 그는 끊임없이 배낭 이야기를 한다. 집이며 가구, 친구들같이 당신의 인생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배낭에 집어넣고, 그것을 어깨에 걸었을 때의 무게감을 상상해보라 말한다. 남자는 바로 뒤이어 배낭을 태워버리라고 선언한다. 혹은 비워버리라고 권유한다. 자 이제 어떠십니까. 그렇게 깃털같이 가벼운 삶. 귀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인생. <인 디 에어>의 주인공인 이 남자는 거의 비워진 배낭을 짊어진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관객들은 이제부터 이 남자의 가볍고 효율적인 인생이 무겁고 비효율적인 인생의 방식으로부터 위협당하는 광경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 끝을 쉽게 예상할 필요는 없다. 어찌됐든 이 영화는 당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놀라울 만큼 훌륭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런 조심성 안에서도 지금 이 시간 세상의 냉정한 단면과 고민을 매우 정직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안아 품는 데서 발견되는 것이다. 배낭을 비우라는 남자의 이야기는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의 선언에서 오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는 365일 가운데 322일을 밖에서 지내는 사람이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만큼을, 이 남자는 일년 동안 비행기로 돌아다녔다. 하늘 위를 집 삼아 전국을 가로지르며 그가 하는 일은 하루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해고를 통지하는 것이다. 남자는 해고전문가다. 인적자원 관리 프로세스에서 해고 부분을 따로 떼어내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회사의 직원이다. 그러므로 그는 집도 가구도 필요 이상의 무거운 인간관계도 필요 없다. 무거운 배낭을 낑낑대고 끌고 가야 하는 게 사람들의 빤한 인생이듯, 이 남자에게는 거의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배낭을 메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빤한 인생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청중의 서로 다른 환경을 전제하지 않은 남자의 조언은 대부분의 사람들 삶에서 작동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고민은 바로 그런 아이러니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건 결국 가벼운 삶과 무거운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환경에 지배돼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지 못하고 그것만이 정석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 특별한 계기를 통해 다른 선택을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다.
해고가 일상이 된 세상과,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이 영화를, 나는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전작 <주노>에 이은 제이슨 라이트먼의 이 새 영화는 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영화에 참여한 아버지 아이번 라이트먼 감독(<고스트버스터즈> <트윈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허지웅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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