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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기고]일그러진 카메라-‘경계도시2’를 보고 / 서해성

등록 2010-03-18 21:26

“시민사회 분단에 안주한 적 없어…자괴감 아닌 싸움의 기록이었어야”
그 여름 송두율 교수는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온 뒤 곧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 사는 송두율은 떠났지만 한국인 송두율은 옥에서 나오지 못한 채였다. 여섯 해 전 일이었고,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한국인의 심신 일부를 옥에 가둔 채 분단의 망령된 실체로 작동하고 있다. 다큐 <경계도시2>를 통해 그해를 떠올리고 재구성하는 과정은 분단과 냉전과 국가보안법을 다시금 관절마다 절감하는 일이었다. 분단에는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 송두율 귀국과 관련한 논점은 달리 복잡할 게 없었다. 한국 지식사회는 망명 지식인의 귀환을 두루 반기는 분위기였다. 대중은 독일에서 활동해온 송 교수에게 한국이 낳은 유럽 지식인상을 투사하고 있었고 그는 그에 걸맞은 행적과 내용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더구나 스스로 거듭 말한 대로 그는 경계인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는 남북한 분단 체제가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는 고도의 가치였다. 요컨대 송두율에게는 한국 지식계가 한껏 기대와 상상을 더한 것까지가 들씌워져 있었다.

막상 그가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송두율보다는 문득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야 옳았다. 6·15선언 이후 몸체를 낮췄던 분단세력이 이를 숙주로 삼아 치열한 공세를 퍼부으면서 기를 살려내기 시작했다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한다. 송두율 귀국과 함께 몰아치던 드센 광풍은 분단 기득권의 근육이 강하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다큐의 상당 부분은 여기에 대응하는 시민사회 진영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대책위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은 귀국, 투옥, 출국까지 동지적 애정으로 송 교수의 고통과 함께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다큐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창작 공연 ‘경계에 피는 꽃’ 같은 경우가 좋은 예다. 보안법과 관련해 시련을 겪은 이들 중 누구보다 사랑받은 사람이 그였다. 조선노동당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으나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한 채 희생당한 숱한 영혼들에 비긴다면 숫제 분에 넘친다 해도 어긋난 말이 아닌 관심으로 시민사회는 그를 감쌌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대목은, 대책위가 마치 사실상 전향을 요구하기라도 하는 듯한 인상을 다큐가 주고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르다. 당시 대책위는 경계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상 도리어 회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해 옥살이를 포함해 보안법과 싸우는 등 현실에 책임을 지면서 극복해내자고 한 것이다. 이는 송 교수에게는 실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활동들을 사상개조 행위식으로 해석해버리는 일은 새로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던 게 이 다큐를 본 소회였다.

한국 시민사회는 장기간에 걸친 비전향장기수 지원 활동에서 볼 수 있듯 분단을 뛰어넘고자 해왔지 그 안에 안주하고자 한 적이 없었다. 대법원에서 송 교수의 활동에 무죄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우연일 수 없다. 싸우고 피 흘린 만큼씩 보안법의 벽은 허물어져 왔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송두율에 관한 기록은 거룩하게 과장된 모종의 자괴감이나 관념적 엄살이 아닌 보안법과 싸운 한국 시민사회의 생동하는 기록이었어야 마땅하다.

소설가, 한신대·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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