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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부조리 자아의 자결 ‘셔터 아일랜드’

등록 2010-03-28 17:55수정 2010-03-28 18:43

부조리 자아의 자결 ‘셔터 아일랜드’
부조리 자아의 자결 ‘셔터 아일랜드’
허지웅의 극장뎐




마틴 스코세이지의 <셔터 아일랜드>에서 견고한 옹벽을 방불케 하는 영화적 형식과 미학적 틀을 확인할 생각은 접어야 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셔터 아일랜드>는 그간 스코세이지 영화와 다른 길을 걷는다. 일단 그 모호한 인물들과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가 한 개의 면을 공유하는 도형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셔터 아일랜드>는 원을 그릴 듯이 세모를 그리다 결국 이건 네모였다고 이야기하는 꼴이다.

이런 당혹감은 미리 데니스 르헤인의 원작(국내 출시명 ‘살인자들의 섬’)을 읽어도 알 수 있듯 서사의 비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의도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이 모든 구멍들이 결말의 파격만으로 온전히 상쇄될 수 있는지에 대해, 나는 쉽게 단정 짓고 싶지 않다. 어찌됐든 혼란은 계획된 것이고 그런 부조리가 이 작품의 장점들을 덮고 지울 만큼 확정적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평가는 취향에서 갈릴 것이다.

(계산된 방황을 고려해볼 때 역설적이게도) <셔터 아일랜드>의 모든 요소들은 스코세이지의 전작들만큼이나 정교하게 배치돼 있다. 다만 그 정교함의 목적지가 미학적 결벽증이 아닌 정신분열에 더 가까울 뿐이다. 트라우마의 영향력 안에 놓인 고전적 인물의 자기분열적인 분투라는 점에서 언뜻 <현기증>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원작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이미지들은 아쉬움의 여지 없이 재구성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선 세심하다기보다 강박이라는 수사가 더 어울릴 정도로 원작의 문장에 집착하는데, 스크린 위에 드러난 애시클리프 병원의 외관만 보아도 그렇다. 특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캐스팅은 적지 않은 불평들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의도를 살리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소설 안에서 그는 젊은 나이와 얼굴에도 불구하고 참전 경력이 주름살로 나타나며 정부에서 지정한 머리 길이를 준수하는 다소 모순적인 표정을 간직한 캐릭터다. 나로서는 디캐프리오 이외의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기 어렵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과정상의 의도된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원작과는 다른 층위에서 독특한 인상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말에서 발견된다. 이 영화의 결말은 원작과 다르다. 원작의 결말이 깊은 연민을 만들어내는 데 그친다면,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괴물로 오래 살기보다 결백한 이로 짧게 사는 게 낫다”는 대사를 통해 연민 대신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한숨과 성찰을 제공한다.

한 가지 대사를 더 떠올려보자. “영웅으로 죽는 대신, 악당으로 살아남는” 결말은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만큼 놀라운 당위를 가진 초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선택이다. 별다른 목적도 당위도 없이 기억을 속이고 현실을 무마하는 괴물 같은 자들이 결백한 인간처럼 오래 살아남는 우리 주위 풍경은, 저 두 문장 사이에서 허무하고 맥없이 떠돌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문학으로 영화로 도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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