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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연기 미숙…수중촬영하다 응급실 실려가기도”

등록 2010-03-31 20:13수정 2010-04-01 08:49

황우슬혜
황우슬혜
영화 ‘폭풍전야’서 시한부 사랑 연기한 황우슬혜
“첫 주연…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아쉬움”




영화 <폭풍전야>는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닮았다. 억새 소리가 스산한 제주의 끝. 언덕 위에 카페를 차리고 바람을 벗하며 사는 여자(미아)가 있다. 거기에 한 남자(수인)가 찾아온다. 페루의 새처럼 오로지 그곳에서 죽기 위해. 물속으로 걸어가는 그를 구하면서 동병상련의 사랑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치명적인 것이어서 완성과 동시에 소멸될 운명이다. 여운이 긴 것은 명작의 얼개를 차용했기 때문일까.

연기 포인트는 ‘절제’였는데…
어렵사리 찍은 수중장면 빠져
에이즈 환자들에 힘이 됐으면

여운의 정체를 찾아 여주인공 미아를 맡아 연기한 황우슬혜씨를 만났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연기가 모자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무엇인지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영화의 도입부. 남자(상병)의 주먹 쥔 손. 손을 펼치자 손바닥 위에 동전이 있다. 다시 쥐었다 편 남자의 손. 동전이 사라졌다. 다시 주먹을 쥐었다 펴자 동전이 다시 나타났다. 또 주먹을 쥐었다 펴려는 남자의 손을 움켜쥐는 여자(미아)의 손. 남자의 손가락을 하나둘 펼치자 손바닥에는 동전이 아닌 붉은 꽃잎이 놓였다.



영화 ‘폭풍전야’
영화 ‘폭풍전야’
상병은 미아에게 마술의 기초를 가르치고, 미아의 살인죄를 뒤집어쓴 채 감옥으로 간 떠돌이 마술사. 배우 황우슬혜한테 영화의 마술을 알려주지 않은 듯하다. 상병은 영화 속 인물이고 황우슬혜는 연기자이니 당연지사. 게다가 황우슬혜씨는 2008년 <미쓰 홍당무>의 조연으로 데뷔하고 이번 <폭풍전야>에서 첫 주연을 맡은 새내기 배우 아닌가.

“미아는 내면의 상처를 감춘 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안에서는 요동치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않죠. 연기 포인트는 절제였어요.”

등장인물들의 평범한 대화 속에 감춰진 절제, 그리고 과정이 생략되면서 기적으로 바뀌는 마술. 서술적인 장르인 영화가 한편의 시로 승화하는 마법은 바로 절제와 생략이었다. 미아의 완결판 마술 ‘꽃비’에 이르기까지 결락된 마디마디를 밀려오는 파도와 억새를 흔드는 바람이 메우고 있음에야 더욱 그렇다.

황우슬혜
황우슬혜

“지난겨울 수중 장면을 촬영하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간간이 따뜻한 물통에 들어가 언 몸을 녹이면서요.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어요.” 미아가 수인과 함께 자살을 꾀하는 그 장면은 시나리오에서 중요했을 법한데 정작 영화에서 통째 빠져 있다. “왜 그런지는 몰라요. 하지만 편집은 감독님의 몫이잖아요.”

영화는 에이즈에 걸린 두 남녀 미아와 수인의 사랑이야기다. 4년 시한에 압축된 파국적인 사랑. 정상적인 경우 삶의 끝을 모르지만, 두 사람의 삶은 시한부인 터. 불가근불가원 그들의 사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바람자루처럼 팽팽한 ‘폭풍전야’다. 정작 그들이 서로 숨결을 맞댔을 때는 파국이다. 삶이나 사랑이나 본디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손에 쥐었다 싶으면 사라지는…. 우수리를 떨궈내고 계산된 생략을 이어붙여 자칫 늘어질 법한 작품을 한편의 아름다운 시로 완성해낸 것은 조창호 감독의 몫이었다. 주어진 말과 행동을 연기한 배우가 감독이 정치하게 짜넣은 행간을 읽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배우 탓도, 감독 탓도 아니다. 감독이 배우에게 편집의 마법까지 알려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애인이나 가족한테서 스스로 고립하는 에이즈 환자들한테 힘이 됐으면 해요. 그분들한테는 주위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황우슬혜씨한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조창호 감독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영화와 시나리오와 녹음대본을 보고 나서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겠다. <폭풍전야>는 그런 영화다. 1일 개봉.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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