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
[남다은의 환등상장] 〈클래스〉
칸 영화제 수상 경력과 잇따른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클래스>가 그만큼 진중한 영화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아무런 미화 없이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현실을 담아냈다는 평가에도 조금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말하자면 그 의심은 이 영화의 리얼리즘과 관련이 있다. 성급하게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시스템 안에 들어가 구체적으로 느끼도록 하는 영화의 선택을 틀렸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고수하는 현장성(시종일관 인물들을 근접 촬영한 흔들리는 카메라)이 때때로 텅 빈 형식처럼 느껴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클래스>가 흥미로운 주제와 스타일의 영화임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더욱이 누군가의 교사거나 학생이었던 경험을 기억하는 자들이라면, 이 영화의 특정 순간에 스스로를 대입하지 않기란 어렵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아무리 가까워지려고 노력해도 결국 어느 수준 이상 닿을 수 없음을 통렬하게 깨달은 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의 현실을 떠올린다면, 그게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그 간극 앞에서 영화가 취하는 태도를 두고 ‘사실적이다’라고 옹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질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요컨대 이 클래스는 인종, 계급, 성적으로 민감하고 다양한 프랑스 사회의 토대 위에 존재한다. 아이들이 내뱉는 거친 말들은 장난스러워 보여도 그 말들의 함의는 대체로 그런 토대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현실 안에서 육체적으로 터득한 말들이라는 점에서 교사의 강의보다 구체적이고 날카롭다. 하지만 영화 속 교사는 다층적으로 체화된 질문과 언어들을 다양성, 관용, 예의, 교양 같은 수사로 흘려버리거나 보편화하고 있다. 그 두 계층, 두 문화, 혹은 두 세대 사이에 놓인 간극의 심화가 골칫덩어리 이민자 학생에 대한 퇴학 처리로 귀결될 때, 이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영화적 비판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퇴학 소년이 결국 영화적으로도 버려진다는 점이다. 그의 퇴학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영화는 교사의 위치에서, 교사의 내적 갈등을 중심으로만 보여준다. 학교를 떠나는 학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후에 영화 내에서 그에 대한 언급은 더는 없다.
더 끔찍한 건, 이제는 방학을 앞둔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배운 것들을 정리할 때, 아무도 떠나간 친구의 자리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에 마음이 쓰일 때쯤, 언제나 말이 없었던 한 여학생이 교사에게 다가온다. 친구들과 달리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며 진심으로 절박하게 울먹인다. 그 텅 빈 표정의 두려움. 그건 기억이 아닌 망각을 가르치는 학교의 진짜 얼굴이 아닐까. 이 영화는, 그리고 이 학교는 길거리로 내쫓긴 소년의 주눅 든 뒷모습과 학교 안에서 떨고 있는 이 작은 소녀의 불안을 끝까지 붙잡아야 했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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