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포즈 데이’
구혼 여행 그린 ‘프로포즈 데이’
여행은 일탈이자 자유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프로포즈 데이>는 여행과 후일담이다. 여로를 따르기 때문에 틀이 무척 단단하다.
부동산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뉴요커 애나(에이미 애덤스). 이제나저제나 프러포즈를 기다리던 애인이 반지 대신 귀걸이를 선물한 채 아일랜드로 출장을 떠난다. 아일랜드에는 4년에 한번 찾아오는 2월29일은 여자가 남자한테 청혼하면 무조건 승락해야 하는 풍습이 있음을 알고 애니는 더블린행 비행기를 탄다.
29일 애인을 찾아가 구혼을 하고 결혼을 했다면 영화거리가 되겠는가. 악천후로 비행기가 더블린에서 멀리 떨어진 웨일스에 착륙하고 만 것.
그러니까 영화는 웨일스에서 더블린까지 이동하면서 새침데기 뉴요커가 촌티에다 까칠한 아일랜드 가이드 데클랜(매슈 구드)과 티격태격하면서 가까워진다. 소똥에 미끄러지고, 진흙탕에 넘어지고, 그곳 땅과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상표와 직함으로 상징되는 뉴요커의 허울을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면서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
말이 부동산 코디네이터지, 실제로는 허접한 부동산을 팔리도록 꾸며 팔리면 장식품을 떼어내는 일이고 애인은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심장전문의라는 게 더 매력적이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당신 아파트에 불이 났는데 60초의 여유가 있다면 뭘 갖고 나올거죠?” 데클랜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애나. 그는 자신의 소지품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거나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막연하던 대답은 더블린에서 뉴욕으로 다시 돌아와서야 얻어진다. 통상적인 출장이 비즈니스-호텔 두 가지로 이뤄지면서 문화적인 접점이 적은 반면, 애나의 바닥훑기식 더블린 여행은 냉온탕을 오간 것과 흡사한 충격. 그러니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두 남녀의 여행을 씨줄과 날줄로 잘 짜인 영화에는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풍광과 풍습,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순박한 심성이 고운 무늬로 박혔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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