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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섹스 대용품’ 인형의 ‘텅빈 세상’ 표류기

등록 2010-04-04 19:09수정 2010-04-05 07:01

고레에다 감독 ‘공기인형’
고레에다 감독 ‘공기인형’
고레에다 감독 ‘공기인형’




<공기인형>은 맹랑하다. 주인공은 공기인형, 곧 공기를 넣으면 사람 크기로 부풀어 흔히 섹스 대용품으로 쓰이는 인형이다. 인간으로 바뀐 인형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 현대도시 이야기다. 요는 그 인간이 완전초짜 새내기라는 거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도 영화는 관객을 빨아들인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몰입시킨다는 편이 옳다. 작은 별에서 온 지구 여행자 <어린왕자>처럼.

초짜 암컷 인간이 띄우는
‘빈 곳’ 채울 사랑의 메시지
인형 역 배두나, 온몸 연기

공기인형 노조미(배두나)는 5000엔대의 구형 모델. 인형 주인은 식당에서 일하는 노총각 히데오(이타오 이쓰지). 오래전 헤어진 애인의 이름을 붙이고 밤마다 섹스 파트너로 삼는다. 노조미는 주인이 출근한 낮시간 인간으로 변신해 외출을 했다가 우연히 들른 비디오가게 알바를 한다. 일하던 중 뾰족한 것에 찔려 바람이 빠지면서 정체가 드러나지만 가게점원 준이치(아라타)의 도움으로 되살아난다. 노조미는 준이치를 매개로 도시인의 사랑과 슬픔을 알게 된다.

노조미의 눈은 어린왕자의 그것과 흡사하다. 초짜 암컷 인간의 눈에 비친 도시는 무척 낯설다. 온통 대체품 세상인 것. 원래에서 한 단계 떨어진 가짜들 투성이다. 그가 점원으로 일하는 곳 역시 ‘가짜영화’인 디브이디·비디오 대여점이다. 고층으로 솟은 아파트는 낮동안 속이 텅 비어 허울로 서 있고, 시장에서 파는 꽃들은 겉만 화려한 변종인데다 뿌리가 잘렸거나 화분에 심어놨다. 인공 공원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그렇다. 자신이 헤어진 애인 대용품인 것처럼, 그의 주인 역시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부품 같은 존재다. 마음이 텅 빈 사람들은 어두컴컴한 곳에서의 자위행위나 혼자서 아구아구 먹는 것으로 빈 데를 채우려 한다. 옆구리가 빈 사람들은 누가 듣든 말든 ‘다녀오겠습니다’와 ‘다녀왔습니다’를 되풀이한다.

현실의 우수리를 떨궈낸 삽화는 우화적이다.


고레에다 감독 ‘공기인형’
고레에다 감독 ‘공기인형’
“하루살이라는 곤충을 아는가? 성충이 되면 하루 만에 죽는다. 몸속은 텅 비었고 위도 장도 없다지. 속엔 알만 가득 차 있다. 낳고 죽으면 끝나는 목숨. 인간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대리교사로 늙은 할아범은 자신의 칠십 평생을 압축하여 그렇게 표현한다. 가슴 저미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생명은 자기 혼자만으로는 완결될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꽃도 암술과 수술이 있어도 불충분하여 곤충과 바람이 찾아와 둘을 이어주어야 한다. 생명은 그 속에 결여를 안고 있어 빈 곳을 타인을 통해 채워야 한다. 세상은 타인들이 만나는 장소. 하지만 서로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하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노조미의 발길은 존재 자체의 고민으로 안내한다.

그가 태어난 인형공장. 거기에는 출고를 기다리는 신제품들이 있고 한쪽 구석에는 폐품이 되어 돌아온 것이 쌓여 있다. “처음에는 다들 똑같았는데, 돌아왔을 때 보면 얼굴들이 다르다. 사랑받았는지 아닌지, 표정에 다 드러난다.” 만든 이, 즉 창조자의 말은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다면 대용품이라도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배두나의 연기가 일품. 삐득거리는 공기인형이 숨쉬는 인간으로 되어가는 것이나, 세상의 것들과 처음 대면하는 초짜인간의 어리숙함과 가득한 호기심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밤마다 벗은 몸이 되는 거나, 섹스 대용품이 되는 거나 야하게 보이지 않는다.

모자란 공기인형이 잘난 인간보다 훨씬 낫다. 영화 역시 억지로 채우기보다 모자란 대로 둔 게 장점이다. 빈 곳은 관객이 채우면서 이야기가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이 기사 역시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 태반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계략에 말려든 셈. 8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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