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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사랑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등록 2010-04-11 17:57수정 2010-04-11 20:27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
한국산 일본영화 ‘사요나라 이츠카’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는 한국산이다. 일본에서 먼저 개봉해 10억엔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괴물>이 거둔 1억3천만엔의 10배에 가까운 액수. 최근 5년간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중 단연 으뜸이다.

흥행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현지화 전략.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로 일본에서 인기 높은 작가 쓰지 히토나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한국으로 치면 공지영 급. 등장인물은 대부분 일본 배우이고 대사도 일본어다. 남주인공은 <제로 포커스>(원제 제로의 초점), <도쿄 랑데부>에서 호연한 니시지마 히데토시. 여주인공은 일본의 ‘국민적 스타’ 나카야마 미호. 쓰지 히토나리의 아내이기도 하다.

거울 차용한 이분법적 대칭
이재한 감독 특유 솜씨 돋보여
먼저 개봉한 일본에서 ‘대박’

성공의 한가운데 이재한 감독이 있다. 그의 ‘물건’ 만드는 솜씨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입증된 바 있다.

이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영화 허리쯤에 등장하는 거울 이미지. 해 저물 무렵 창유리 거울에 남자주인공이 25년에 걸쳐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한 장면으로 압축했다. 이 거울을 축으로 영화를 반으로 접으면 전반과 후반의 꼭짓점이 일치한다.

이스턴항공 방콕지사에서 일하던 야망이 넘치는 사원 유타카(니시지마 히데토시)는 도쿄 본사의 사장이 돼 있고, 유타카를 유혹하던 팜파탈 도코(나카야마 미호)는 50대 여인으로 방콕에서 옛 연인을 기다리고 있다. 출세를 위해 사랑을 버렸던 유타카가 방콕을 다시 찾으면서 25년 동안 유지해온 가정의 균형이 깨진다. 그것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인이다.

두번째 거울은 영화의 끝 무렵에 등장한다. 도코의 환영과 마주한 유타카. 이들은 거울을 사이에 두고 ‘사랑해’라는 말을 반복한다. 사랑했을 때는 그 말은 입속에 맴돌았고 말을 해야 한다고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것. 사랑해라는 말에는 그런 회한이 묻어난다. 아들한테서 ‘꿈을 잃은 꼰대’라는 비난을 받은 유타카가 다시 방콕을 찾았을 때 도코는 죽음에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 사랑이 시간을 기다려주는가.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
대칭거울 말고도 영화에는 실제 대칭이 반복된다. 젊은 유타카를 축으로 관능적인 도코와 정숙한 약혼녀 미쓰코(아사다 유리코)가 대칭을 이루고, 감독은 번트 사인을 내지만 강공으로 홈런을 치는 유타카와 감독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유타카의 회사 동료가 도코를 축으로 역시 대칭을 이룬다.

25년 뒤 후반부, 꿈을 잃고 완고하게 변한 늙은 유타카는 자기만의 꿈을 찾아 집을 박차고 나간 아들과 살림방 문 안팎으로 대치한다. 삶 자체가 쌍둥이 대칭은 아닐까. 지금의 삶을 선택한 대신 살아보지 못한 삶을 그림자처럼 거느리는…. 주인공 유타카가 그동안 이룩한 지위와 명성을 버리고 방콕으로 향하는 것은 그 그림자에 대한 미련이다. 시끌벅적한 남국의 햇빛, 넘실거리는 타이 차오프라야 강변의 갈림길, 그리고 지극한 사랑을 나누던 오리엔탈 호텔은 옛사랑의 그림자인 것을.

이분법적 대칭은 분명함과 통하는 통속적 장치. 여러 곳에 숨겨진 이 장치들은 굴곡지는 스토리의 흐름에 맞춰 기뢰처럼 터지며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시와 함께.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르 녹아버리는 얼음조각//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는 거야/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거야/ 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일본에서 터진 대박이 한국에서도 터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50대에 조강지처를 버리고 옛 연인을 찾아 새 출발을 모색한다는 설정이 얼마나 어필할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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