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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수묵화같은 영상에 스며든 이상과 현실의 대결

등록 2010-04-25 17:55수정 2010-04-25 19:23

이준익 감독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준익 감독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준익 감독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차승원·황정민 내공 깊은 연기
절제된 배경·화려한 액션 일품

원작에서 벗어난 ‘과도한 해석’
되레 메시지 전달 방해 아쉬워

이준익표 사극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나왔다. <황산벌>(2003년)과 <왕의 남자>(2005년)에 이어, 역사물로는 세번째다. 박흥용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이준익식 변주를 거쳐 해학과 풍자, 조롱과 냉소, 비극적 결말 등이 전작들과 연속선을 긋고 있다.

이야기 알맹이는 단순하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세상을 구해보겠다고 대동계가 발기하고, 이 안에서 ‘선 왕조 타도, 후 왜구 섬멸’을 주장하는 야심 큰 급진 혁명가 이몽학(차승원)과, “칼잡이는 칼 뒤에 숨어야 한다”며 현실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맹인 침술사 황정학(황정민)이 맞선다. 여기에 이몽학의 칼에 숨을 거둔 세도가 한신균의 서자로 복수에 이를 가는 견자(백성현)와 이몽학을 사랑하며 그를 따르는 기녀 백지(한지혜), 한심한 당파 싸움에 몰두하는 동인과 서인, 무능한 왕이 배경처럼 곁들여진다.

영화는 실제 역사와 다를뿐더러 원작 만화와도 상당히 다르다. 황정학, 이몽학 등 실존 인물은 만화에서처럼 등장하지만 재해석과 재구성을 거쳐 역할의 비중이 막대하게 커졌다. 원작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견자는 매우 축소됐고, 백지는 원작에서 견자와 얽힌 여성 캐릭터 4명이 뒤섞여 있으나 역할이 크지 않다.


이준익 감독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준익 감독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영화의 묘미는 무엇보다 영상미다. 곳곳에 감독이 신경 쓴 듯한 그림들이 배치돼 있다. 카메라는 안동 옥연정사의 백사장, 창녕 우포늪의 억새길, 고창읍성의 맹죽림 등을 멀리서 드넓게 잡아내며 수묵화 같은 효과를 준다. 수묵의 배경이 고요히 흘러 지나면, 화려체의 무협지를 연상케 하는 컬러풀한 액션이 화면에 긴박감을 채운다.

두 주인공 황정민과 차승원의 연기 역시 일품이다. 맹인 침술사이자 칼잡이를 연기한 황정민의 엉거주춤한 포즈와 찡그린 표정은 영사막이 어두워지고도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사를 치는 솜씨 역시 황정민 외에 대안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캐릭터와 일치한다. 차승원 또한 예의 그 카리스마와 비감 넘치는 눈빛이 절망을 향해 뛰어드는 이몽학에 맞춤하다.


적지 않은 공력이 녹아든 작품임에도 아쉬운 부분 또한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독이 늘 염두에 둬 온 ‘메시지’가 그렇다. 이 감독은 기자 시사 뒤 간담회에서 “영화로 메시지가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하면 내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변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과연 그의 메시지는 잘 보였을까? 드러내려 애쓴 듯하지만, 도리어 그런 과도함이 역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다. 어리석고 황당한 수준의 논쟁을 일삼는 동·서인과 목소리만 큰 허수아비 왕의 모습은 그리 강조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할 바다. 이몽학의 급진적 세계관과 황정학의 현실주의적 가치 사이의 부딪힘은, 오히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라는 짙은 허무만 남긴다. 이몽학의 급진주의는 개인의 욕망에 가닿아 있다는 점에서, 황정학의 현실주의는 민초들의 절망에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기에 이몽학의 결과적 실패는 예견되고, 황정학의 시도조차 없었던 실패는 별 비감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영화 끝자락에 이몽학과 황정학 모두 숨을 거둔 뒤 견자가 이 둘의 칼을 모두 쥐고 싸우는 장면으로 대안을 암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견자의 캐릭터가 너무 가냘팠다. 28일 개봉.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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