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선택한다는 것…청춘의 아픈 숙제

등록 2010-05-02 18:50

영화 ‘하프웨이’
영화 ‘하프웨이’




[남다은의 환등상자] 하프웨이

도저히 견디기 힘들 정도로 낯간지러운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소녀의 사춘기적 감상을 나열한 것 같다고 거북해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더러는 ‘나도 한때는 그랬지’라고 향수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프웨이>에 관한 이해 가능한 비평들이다. 물론 작품성에 대해 논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솜사탕 같은 영상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건 지나간 청춘에 대한 그리움 때문도, 그 시절에만 있을 법한 낭만적 로맨스 때문도 아니다. 그 이유를 들여다볼 때, 반짝이는 영화 속 세상은 순정만화의 풍경이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불안하고 병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의 열병. 흔히 우리는 그것을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 즉 짝사랑의 아픔이라고 여긴다. 사랑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 열병은 끝난다. 그러나 <하프웨이>가 앓고 있는 열병은 더 근본적인 차원에 있는 것 같다. 여기에는 극적인 드라마가 없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일방적이라거나, 서로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식의 어긋남은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 병은 짝사랑보다 뭔가 지지부진하면서도 질기게 영화를 맴돈다.

히로와 슈는 연인이다. 히로를 만나기 전부터 도쿄의 명문대학 진학을 꿈꿔온 슈와 그런 슈를 붙잡고 싶은 히로. 두 사람은 의도와 무관하게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상황에 대한 슈와 히로의 내적 갈등은 주변 어른들의 입을 경유해서 드러난다. ‘너무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 둘의 관계를 길게 본다면, 어떤 선택이 서로의 미래를 위해 더 발전적일까.’ 물론 성숙한 인간의 사랑은 그런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눈앞의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면 도대체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그리 쉽게 장기적인 관점을 말하는 것은 온당한가. 마음의 균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균형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으려 애쓸 때, 그 균형을 넘치는 감정의 잉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끝까지 돌보지 않아 어딘가를 떠도는 감정은 이 영화가 앓고 있는 열병의 근원이다.

그런 맥락에서 <하프웨이>는 예상과 달리 감정의 전시가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삼키는 영화에 가깝다. 영화의 영상미가 찬란하게 순수하기보다는 어딘지 안으로 상처 입은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때문이다. 영화는 두 청춘의 선택을 감싸지만,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들의 ‘어른스러운’ 이별 뒤에 그 담담함과 상반되는 소녀의 마음을 갑작스러운 에필로그로 삽입하며 영화 역시 흔들린다. 사랑을 하는 우리는 어떤 마음을, 어떤 순간을 붙잡아야 하는가.

남다은 영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