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흉내내는 가짜 자경단
허지웅의 극장뎐 / 토니 스타크와 브루스 웨인은 닮은꼴이다. 이 전도유망한 재벌 2세들은 아버지가 물려준 거대 회사를 운영한다.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플레이보이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특별한 슈트를 즐겨 입는다. 슈트를 챙겨 입는 순간 그들은 아이언맨과 배트맨이라는, 다른 이름의 정체성을 갖는다. 재미있는 건 아이언맨과 배트맨이 스타크와 웨인이 닮은 꼭 그만큼 서로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아이언맨과 배트맨은 자경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아이언맨은 공개된 영웅으로서 다른 히어로들에게조차 정치적 역량을 발휘한다. 배트맨은 자아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한다. <시빌 워>를 전후한 코믹스 시즌에서 아이언맨은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음모로 인해 이성을 잃고 대형 참사를 일으킨다. 이를 계기로 슈퍼히어로의 책임의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결국 초인 등록법안에 앞장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반대진영의 캡틴 아메리카와 충돌하고 비극을 야기한다. 스파이더맨이 퍼니셔를 혐오하는 이유는 거대한 힘에 거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을 퍼니셔가 거스르기 때문이다. 흥분하면 힘줄이 불거지고 커지는 성기, 아니 헐크가 아이언맨을 짜증내는 이유는 아이언맨이 초인으로서의 자아를 취사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것을 즐긴다는 데 있다. 그와 유사하게 아이언맨과 배트맨이 디시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라는 본연의 우주를 벗어나 같은 평행우주에서 만난다면 눈앞의 경쟁자를 무척 싫어할 게 틀림없다. 그건 배트맨이 슈퍼맨과 친구이기는 해도 동료일 수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 물론 슈퍼맨의 정체성은 아이언맨보다 캡틴 아메리카에 가깝다. 문제는 슈퍼맨이 대의를 내세워 공공의 선을 실현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반면 배트맨은 슈퍼히어로의 대의라는 것이 결국 개별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둠의 기사를 자처하고 욕을 먹든 말든 음지에서 자기파괴적인 행보를 계속한다. 그런데 아이언맨은 토니 스타크로서의 자아를 숨기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정의를 논한다. 주제에 다른 초인들의 정의가 주관적이라며 그것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는다. 배트맨이 그를 좋아할 리 없다. 아이언맨이 정계의 논객이라면 배트맨은 익명의 키보드 워리어다. 둘 다 슈퍼히어로의 객관적인 정의를 경계하지만 아이언맨은 통제를 강제하려 하고 배트맨은 딜레마를 인정한 채 명예를 포기한다. 우리는 이들의 고민에서 대의를 주장하며 그것을 주변에 강권하는 방식으로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자들의 오늘을 성찰하게 된다. 당장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며 지사인 양 행동하는 의원들을 보자. 그들은 스스로 배트맨처럼 굴지만 실상 아이언맨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주장을 고집하며 스타크나 웨인마냥 전교조에 성금, 아니 벌금을 시원하게 쾌척할 능력도 없다. 가장 위험한 건 히어로를 흉내 내는 가짜 자경단이다. 저들이 바로 그렇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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