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아버지 된 아들들의 ‘사부곡’

등록 2010-05-09 22:55

영화 <아이 노우 유 노우>
영화 <아이 노우 유 노우>
5월에 찾아온 두 편의 ‘부자지정’




아들은 아버지를 선망하고 경외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 원망하다 증오하기도 한다. 그런 아들도 언젠가는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나이를 살게 된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쓰기도 하고, 이해시키려 들지 않았던 아버지를 상처로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끝은 대개 연민이다. 이런 연민을 품고 그리움으로 아버지를 되살리는, 같으면서도 너무나 다른 영화 두 편이 나란히 찾아왔다. 4일 개봉한 <아이 노우 유 노우>와 27일 개봉을 앞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다.

‘아이 노우 유 노우’
그토록 멋지고 자랑스러웠건만…
초라한 진실 알게된 소년의 연민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경멸하고 증오하고 혐오했건만…
임종 지키며 유년의 의문 풀어내

두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을 다뤘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우선 모두 영국 영화이고,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나온다. <트레인스포팅>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고 <풀 몬티>로 이름을 널리 알린 로버트 칼라일은 <아이 노우…>에서 아빠 찰리를 연기했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맘마미아> <싱글맨>에 출연한 콜린 퍼스는 <아버지를…>에서 아들 블레이크로 나왔다.

더욱 핵심적인 공통점은 실화라는 데 있다. <아이 노우…>는 이야기가 끝나고 고백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마약과 섹스에 찌든 영국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린 <휴먼 트래픽>으로 <트레인스포팅>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던 저스틴 케리건 감독이 추억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를…>은 아예 처음부터 ‘실화’라고 터놓는다. 소설가 블레이크 모리슨의 자전적 작품이 원작이다. 들머리에 주인공의 목소리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의 아버지는 실패하지도 않고, 패배하지도 않고, 심지어 죽지도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진짜 아버지를….”


영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영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두 영화가 추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아이 노우…>의 11살 소년은 엄마 없이 아빠와 살지만 신난다. 영국의 위성사업과 관련한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스파이 아빠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긴장감 넘치고 불안하지만 아들은 “이번 임무를 마치고 큰돈을 받아 미국으로 가자”는 아빠를 신나게 돕는다. 문제는 임무를 마친 뒤다. 돈을 줄 사람은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빠가 빠진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나선 제이미는 곧 눈치채게 된다. 반전이다. 첩보물이었던 영화에, 아버지에 대한 감독의 연민이 고스란히 드러나면 당혹감마저 든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넘어 더 큰 산이어야 할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실체를 본 11살 소년의 놀라움과 안타까움은, 소년 시절 불안하게 목격했던 아버지의 슬픈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첩보영화로는 물론, 멜로드라마로도 어설픈 구석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마지막 고백이 오래도록 센 여운을 남긴다.

<아이 노우…>가 아버지의 초라한 한순간과 어린 아들의 연민을 다뤘다면, <아버지를…>은 증오와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되돌아보며 이해해가는 아들의 모습을 그렸다. 유년의 아들에 비친 의사 아버지는 구두쇠에 자기중심적이며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가식과 독선의 제왕이다. 작가를 꿈꾸는 아들을 비난하고 돈 한 푼을 아끼려고 처자식을 옆에 두고 남들에게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강고하고 높게 막아선 장벽 같은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성인 아들은 떠난다.

훗날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세상을 뜨는 법이다. 암에 걸려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아들은 내키지 않지만 찾아가 주변을 맴돌며 마지막을 기다린다. 옛일들을 다시 떠올리고 아버지를 바라보던 유년의 의문을 풀어나간다. 극적인 재미는 덜하지만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아들이 아버지와의 옛일들을 다시 곱씹어가는 모습들이 은근히 마음에 젖어든다. 끊임없이 배경에 등장하며 인물을 여러개로 비추는 거울들은 옛일들을 되비쳐 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