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후드’
칸 영화제 개막작 ‘로빈후드’
리들리 스콧 감독 ‘의적 서사극’
반성 모르는 권력의 속성 고발
리들리 스콧 감독 ‘의적 서사극’
반성 모르는 권력의 속성 고발
“역시 리들리 스콧!”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 <로빈후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제 개막 하루 전 11일 열린 시사회 뒤 연방 탄성이 터져나왔다. 리들리 스콧의 <로빈후드>는 의적 이야기라는 흔한 예상을 깼고, 140분 상영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했다. 또한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아름다운 영상미, 나무랄 데 없는 연기가 조화로웠다. 우리가 아는 로빈후드는 의적이다. 이 특출난 활잡이는 귀족의 재물을 뺏어다 주리고 헐벗은 이들과 나눈다. 수없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온 이 익숙한 이야기를 스콧은 그대로 차용하지 않는다. 스콧의 로빈후드는 부패하고 무능한 왕권에 맞서다 외적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영웅이다. 사악한 노팅엄의 영주는 로빈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나약한 여성 마리온 역시 스스로 칼을 드는 강단있고 당찬 여성으로 재탄생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로빈 롱스트라이드와 마리온과 숲에 버려진 고아들이 함께 ‘로빈후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놓은 지점에 흥행 제 1원칙이 놓여 있다. 감독이 영화에서 말하는 바도 명확하다. 시대의 주인공은 왕도 귀족도 아니라는 것.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선한 권력이라도 명확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으며, 이를 바로잡을 주인공은 민중이라는 것. 권력의 반성하지 않는 속성, 언제 반성했느냐는 듯 제 입으로 떠든 금과옥조의 약속도 쉽게 뒤집는 철면피적 권력의 속성을 스콧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는 과거 이 땅의 절규는, <로빈후드>에서 기사를 규정하는 건 기사의 갑옷뿐이라는 식으로 반복된다. 로빈 롱스트라이드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석공 아버지는 “일어나고 또 일어나라.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라는 말을 남긴다. 김수영 시인의 시 <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심화하는 전세계적 시민 생존권의 근본 문제를 스콧은 지나치리만치 냉철하게 반복해서 직시한다. 스콧의 특기인 스펙터클 역시 이 서사극에서 빠지지 않는다. 화려한 전투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특히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프랑스와 영국의 전투신은 그 장엄함이 자못 아름답다. 무엇보다 영화 앞뒤로 붙어 있는 유화풍 애니메이션은 그 자체 별도의 작품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눈길을 붙든다. 13일 전세계 동시개봉.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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