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하하’
[남다은의 환등상자] 하하하
홍상수 감독의 신작 <하하하>는 비평적으로 이미 많이 말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동안 홍상수의 영화들을 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한 관객들도 <하하하>만큼은 충분히 편하게 즐길 만한 영화라고 여기는 것 같다. 홍상수가 특정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니,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다면, 이런 반응은 반길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하하>를 홍상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평가할 때, 그 이유를 단순히 전작들보다 편안해졌다는 점에서 찾는 견해를 받아들이기는 망설여진다. 부분적인 인상만으로 영화의 전체 덩어리를 판단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한 문제지만, 그에 대해 자세히 논할 자리는 아니다. 대신, 전작들로부터의 어떤 변화를 느끼게 만드는 장면들 중에서 유독 잊기 어려운 한 장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문경(김상경)과 중식(유준상)이 청계산에서 만나 통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는 과정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현재는 두 남자의 목소리만 살아 있는 흑백 스틸사진으로 제시되고 과거의 기억은 컬러로 된 동영상의 세계다. 두 시점을 오가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예상을 깨고 현재로 돌아오지 않고 과거의 어떤 순간에서 멈춘다. 그리고 그 장면은 홍상수의 영화를 즐겨 본 이들에게도 좀 놀라움을 안길 것이다. 중식과 연주(예지원)가 여수행 버스에서 서로의 마음을 예쁘게 고백하는 장면인데, 그간 홍상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혹은 어렴풋이 보았던 찬란한 힘이 전면화된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의 마음으로 충만하다. 무언가의 실패, 혹은 환멸을 드러내며 줄곧 인물 홀로 맞이하던 앞선 작품들의 결말과 비교해도 다르다. 여행길에서 결국 집으로 돌아온 남자가 아내와 맞이한 꽉 막힌 결말(<밤과 낮>)과도, 어쨌든 씩씩하게 여인 홀로 길을 나서게 만드는 결말(<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과도 다르다. 두 연인이 해맑게 “아무것도 몰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만 알면 충분해”라고 말하는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해 세상을 바라보는 홍상수의 시선이 밝고 온건하게 변했다고 단정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끝이 전제된 한때의 감정일 뿐이라고 냉소하는 건 그의 세계를 오해하는 길이다. 과거 어느 인터뷰에서 홍상수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근거 없는 이상은 버려야 하지만, 사람으로서 조화로운 상태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통념에 기대어 쉽게 생각하진 말아야 한다. 중요한 걸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조금 더 자기다워지고, 더 나아지고, 본질적으로 자기를 변화시키려는 행위는 중요하다. 그래봐야 별거 없다는 식의 태도는 가식적이고 사람의 몫이 아니다.” <하하하>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는 이제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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