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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에서 사회성이란…“사람 향한 따뜻한 시선”

등록 2010-05-16 18:44수정 2010-05-17 10:18

‘내 깡패같은 애인’의 박중훈
‘내 깡패같은 애인’의 박중훈
‘내 깡패같은 애인’의 박중훈
“우리나라 백수들은 너무 착해” 88만원 세대 향한 무식한 위로
“정치 무관심은 책무유기…바로 못가는 정치엔 저항의식 필요”
“영화는 종교”라고 고백하는 배우 박중훈은 진중하고 독실한 신자였다. 오만과 과욕을 두려워하고 신념과 충심, 감사와 성실 등을 강조하는, 절대자 앞에 겸허히 무릎 꿇은 모습이랄까. 지금 그의 앞에는 20일 개봉하는 <내 깡패같은 애인>, 이달 초 촬영을 마친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등이 놓여 있다. 배우 인생 25년, 영화 40편을 제단에 올린 그를 지난 11일 만났다.

마주 앉자 대뜸 <한겨레> 글꼴을 논하는 그에게, <내 깡패같은 애인>의 평가가 나쁘지 않더라고 운을 뗐다. “예술가에게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반복이에요.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자뻑’이지요. 이걸 항상 경계해야 하는데, 최소한 부끄럽진 않아요.”

‘3류 깡패’-‘88만원 세대’ 연대기
오랜만에 몸담은 ‘사실주의’영화
“내년엔 ‘행복한 감독’이 될 것”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없나요?

“아쉽다면 예산이 더 있었더라면 하는 건데요. 이를테면 눈 오는 장면을 찍어도 도시 인파 속에 눈이 오는 가운데 주인공이 걸어가는 식으로 펼칠 수 있을 텐데….”

이번 영화의 예산은 10억여원. 충무로 영화 한 편에 통상 20억~30억원 정도를 쓰니 절반 정도인 셈. 영화는 줄곧 반지하방 이웃으로 만난 3류 깡패 동철(박중훈)과 취업투쟁 중인 지방대 졸업생 세진(정유미)만을 비춘다. 산동네 골목길과 반지하방 세트가 주무대, 간혹 나오는 조직 소굴이나 회사 사무실, 시골 간이역을 떠올려봐도 큰돈은 쓰이지 않아 보인다.

‘로맨틱 코미디’처럼 홍보됐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사회 낙오자들의 연대와 분투를 담고 있다. 그 남자 3류 깡패는 그 여자 88만원 세대에게 툭 던진다. “우리나라 백수들은 참 착해요. 프랑스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때려부수고 난리던데…. 니 탓이 아니야. 힘내 씨×.” 마침 영화는 이창동 감독 아래서 조연출을 지낸 김광식 감독의 입봉작이다.


-그런데 왜 하필 조폭인가요?

“제 생각에는, 88만원 세대를 위로하되, 현학적이지 않게, 전혀 사회 문제의식이 없는 무식한 사람을 통해 하려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래서 동철이 일자리를 못 구하는 세진에게 나름의 위로를 할 때도, 최대한 무식하게 한 겁니다. 욕도 섞어 가면서.”

동철이 교육방송을 즐겨 보도록 설정된 것도 이런 장치의 일환일 터다.


배우 박중훈
배우 박중훈
-종전과 좀 다른 조폭이긴 해요.

“멋있는 계보 있는 건달은 아니고, 찌질한 동네 깡패보단 조금 위인 정도. 그런 면에서 사실성이 있어요.”

실제로 <내 깡패같은 애인>은 기존 조폭영화들을 조소하는 듯하다. 허름한 ‘추리닝’ 입고 여기저기 맞고 다니는가 하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동철은 조폭 동네 망신 다 시키고 다니는 꼴뚜기 격이다.

-사회성 있는 영화는 오랜만이죠?

“사실성 있는 영화죠. 사실 제가 1980년대 <칠수와 만수> <우묵배미의 사랑> 같은 사실주의적 영화 대표배우였는데…. <황산벌>도 있고요. 사회 문제를 담은 영화는 오랜만이네요.”

-요즘 같은 때 부담도 될 법한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회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죠. 좋은 영화는 사람 이야기를 잘 다뤘을 때 나오는 거고요.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를 포함해서 좋은 영화는 반드시 사람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장 중요한 거죠.”

-그래서 영화판에 좌파가 많다는 얘기가 나온 건 아닌가요?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웃었다. “가장 안타까운 게 그겁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만 본다는 거죠. 이른바 우파나 건강한 보수, 진정한 보수의 영화도 엄청난 사람 이야기로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정치에 관심 있죠?

“어마어마하게 관심 많아요. 정치는 싫어해도 누구든 정치를 떠날 수는 없으니까요.”

-나중에 직접 할 생각은?

“0%. 죽을 때까지 단 한번의 시도도 없을 겁니다, 관심은 항상 갖되. 시민의 정치 무관심은 책무유깁니다. 무관심하다는 게 마치 쿨한 것처럼 보여지는 건 굉장한 착오죠. 특히 예술계에 이런 경우가 많아요. 정치에 대해 늘 팔로업할 필요는 없지만, 바로 가지 못하는 정치에 대해선 시민으로서 저항의식이 필요합니다.”


배우 박중훈
배우 박중훈
인간적 털털함 뒤에는 바늘 들어가기조차 어려운 견고한 의식이 엿보인다. 역시 영화는 그에게 종교인가 보다. 정치는 무슨 정치, 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작가랑 같이 시나리오 작업 중이고 내년께 촬영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4~5년 전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모험 아닌가요? 돈도 많이 들어갈 텐데.

“투자 받아야죠. 투자 못 받으면 하지 말아야 해요. 오죽 프로젝트가 나쁘면 투자를 못 받겠나. 그런 건 하면 안 되고, 인정받고 투자도 받아야 하죠. 저는 준비가 안 됐거나, 자신 없는데 하는 걸 두려워했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없이 살아왔습니다.”

-한국영화 위기라고들 하는데요?

“만날 위기래요. 중흥기와 위기를 수십번 봤는데, 수십년간 늘 그래왔거든요. 불법 다운로드가 가장 큰 현실적 위기의 원인이긴 하죠.”

-낙관적이신 듯?

“옛날 제 꿈은 성공하는 사람, 획득하고 쟁취하고 성공하는 게 인생의 큰 가치였어요. 지금은, 행복한 사람이고 싶어요. 이젠 행복하고 더불어 이루고 싶은 거죠. 이루지 못하면 좌절하고 안달했는데 제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었겠어요.” 불혹에서 지천명을 향해가는 ‘영화교도’ 박중훈의 내일의 키워드는, 행복한 감독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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