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은 알아본 ‘하녀’의 천민 코드
유럽 관객, ‘귀족성’의 아이러니 공감
“여주인공이 영화 자체” 전도연 호평
“여주인공이 영화 자체” 전도연 호평
그랑 뤼미에르에 관객들의 박수가 울려퍼졌다. 지난 16일(현지시각) 0시20분께, 칸에 진출한 한국 영화 <하녀> 갈라쇼가 끝나자 2600여 관객은 모두 일어나 관객석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임상수 감독, 전도연, 윤여정, 이정재씨를 향해 3~4분 동안 박수를 날렸다. 처음 무작위로 시작된 갈채는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박자에 맞춘 박수로 바뀌었다.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출연진들은 답례로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특히 임상수 감독은 한껏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정도면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성공한 것이라고 이광모 감독은 말했다. 친구와 함께 온 미국인 에마는 “트레 비앵(아주 좋아요)”이라며 두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프랑스인 카롤라인은 “여주인공이 곧 영화 자체”라며 “여주인공의 역할이 무척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남성 관객은 “말하지 싶지 않다”며 시큰둥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토요일 발행된 <스크린>이 준 평점은 3점 만점에 평균 2.2로 그런데로 좋은 편. 중국 왕샤오솨이의 <청킹블루스>와 같고, 마티외 아말리크의 <투르네>의 2점보다 높은 점수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잡지 <르 필름 프랑셰> 평가자들의 평가는 1.67점으로 낮게 나왔다. 엇갈린 평가에 대해 이광모 감독은 “<하녀>가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작품인 만큼 미국과 프랑스 평자들의 평가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칸에서 본 <하녀>는 한국에서 본 것과 상당히 달랐다. 2600석인 그랑 뤼미에르의 대형 스크린의 뛰어난 화질은 웬만한 영화를 틀어도 먹힐 만큼 화면발이 좋았다. 스타일리시한 임 감독의 <하녀>는 그 점에서 일단 점수를 따고 들어갔다. 무엇보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보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이지 않았지만, 감독이 숨겨놓았거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장면들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우선 칸에서는 주인 남자 훈(이정재)이 사는 유럽풍의 대저택이 생경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재벌가의 사는 모습이 베일에 싸여 단지 그럴 거라고 추정할 뿐이어서 현실감이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이 범지구적인 재벌가로 치환되며 개연성이 높아지면서 사실성을 확보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주인공들의 천민성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주인공 이정재가 하녀를 겉으로는 인간적으로 대하지만 속내는 “천한 것들은 할 수 없지”라고 한다든지, 포도주를 일상적으로 마시면서도 입속에서 후르륵 소리내는 모양이 대저택의 귀족성과 정확히 어긋나면서 임상수 감독의 의도가 도드라졌다. 이와 함께 하녀 은이(전도연)의 환경이 음식점 잡역에서 재벌가 입주 하녀로 바뀌면서 대저택을 배경으로 은이의 과거를 환기하는 장치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주인 남자를 배웅 또는 영접할 때를 빼고는 정문을 출입하지 못하는 모양, 허벅지에 난 커다란 화상흉터, 은이를 찾아오는 옛 친구의 굽실거림이 한국에서는 눈이 띄지 않던 것들이다. “진짜 하녀는 속속들이 천민성이 밴 재벌 집안, 또는 우리 모두일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임상수 감독의 말이 칸에서 더욱 부각된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은이가 밴 씨앗을 지우려는 장모의 행태를 두고 “이봐요”라고 정색하는 것도 서구에서 흔한 장모와 사위의 불가근불가원 관계로 읽히고, 주인 여자 ‘해라’(서우)가 남편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읽는 책 <제2의 성>도 그 책에 익숙한 유럽 관객들의 웃음과 함께 보는 묘미를 더했다. 결정적인 약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은이가 자신을 죽임으로써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 유럽인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영화전문지 <스크린>이 은이가 샹들리에에 매달려 불길에 싸인 채 오랫동안 흔들리는 장면을 두고 드라마적 진실보다는 단순한 볼거리로 보일 수 있다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잡지는 <하녀>가 “호감이 가며, 블랙유머로 가득하지만 매너리즘으로 마지막을 처리했다”며 “화면발에 쏟을 에너지를 스토리에 쏟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보였다. 칸/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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