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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였기 때문에 사랑했노라

등록 2010-05-20 21:24

영화 ‘싱글맨’
영화 ‘싱글맨’
영화 ‘싱글맨’
‘퀴어무비’ 불편함 뛰어넘어
‘구치’ 디자이너 톰 포드 연출




아무래도 동성애 영화는 불편하다는 게 다수 토종 남성 이성애자의 솔직한 심경이다. 아무리 머리로 다양성과 존중과 관용의 염을 되뇌어도, 깨지지 않는 고정관념과 감출 수 없는 이질감을 떨치기는 어렵다.

<싱글맨>은 달랐다. 진솔하고 묵직한 사랑,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듯한 상실의 아픔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첫 장면. 하얗게 눈이 쌓인 길목에 전복된 자동차를 향해 소리 없이 걸어가는 깔끔한 신사. 피 흘리며 숨져 쓰러진 남성 옆에 그는 나란히 누워본다. 그리고 짧은 입맞춤. 말 한마디 없이 온전히 전달되는 애잔함.

중년의 대학교수 조지(콜린 퍼스)는 그렇게 16년간 사랑해 온 연인 짐(매슈 구드)을 갑작스레 떠나보낸다. 이제 조지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의미한 삶으로부터 떠날 결심을 한 조지는 깔끔하게 주변을 정리한다. 죽은 뒤 입혀질 옷과 구두를 골라두고 넥타이는 느슨하게 매달라는 부탁까지 종잇장에 남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방황하고 갈등하는 그에게 또다른 삶의 희망이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과 함께 조용히 다가온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조지는, 짐이 남자여서가 아니라 그저 짐이기 때문에 사랑했노라고, 사랑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따라서 이성애니 동성애니 하는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관객들에게 말없이 호소한다. 이렇게 <싱글맨>은 ‘퀴어무비’라는 좁은 틀을 벗어난다.

감독 톰 포드의 공력이 눈부시다. 세계적인 브랜드 ‘구치’를 파격적으로 쇄신해내는 데 성공한 디자이너이자 자신 역시 동성애자인 톰 포드의 첫 연출작이다. 영화 곳곳에는 조지의 검은 뿔테 안경과 기품있는 슈트처럼, 이 빼어난 디자이너의 절제된 손자국이 찍혀 있다.

원작인 동명 소설 역시 동성애자인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투영돼 있다. 20세기 대표적 소설가이자 동성애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그는, 조지처럼 서른 살 이상 차이 나는 연인과 33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다 81살에 세상을 떴다. 동성애자가 쓰고 동성애자가 연출한 동성애 영화가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깔끔하고도 강렬하게 성취해 낸 것이다. 콜린 퍼스는 이 영화로 지난해 베네치아영화제, 올해 영국 아카데미영화제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7일 개봉.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스폰지 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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