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독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뒤 줄곧 ‘남녀관계’를 작품의 화두로 삼아왔다. 그의 영화에서는 일상 속 남녀들이 적나라하게 본능을 드러내고 이를 감추려는 몸짓조차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솔직하다. 위선적이거나 위악적이면서 뻔뻔하고 비열하며 간교하다. 홍 감독이 까발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자아비판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부족하고 모자라고 나쁘기까지 한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의 의미로도 읽힌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로는 처음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은 <하하하>는 제목 그대로 매우 유쾌하다는 점에서 기존 홍 감독 영화들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평을 들었다. 캐나다 밴쿠버영화제 용호상을 받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비롯해 <강원도의 힘>(1998년), <오! 수정>(2000년), <생활의 발견>(2002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년) 등 그의 영화는 어둡거나 우울한 시선으로 가득 찬 편이었다. 이런 개성적인 시선으로 홍 감독은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칸 영화제는 <강원도의 힘>과 <오! 수정>을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했고, 이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경쟁 부문으로 불러들이며 관심을 보였다.
홍상수 영화의 색채는 2005년작 <극장전>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실 직시의 결과가 암울하고 비관적이었던 데서, 밝은 빛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욕망을 풀어헤쳐 놓았지만 그런 모습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해변의 여인>(2006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년) 등에서도 이런 변화는 이어졌다. 끊임없이 술판이 벌어지고, 술 취해 풀어진 인물들은 숨겨뒀던 본성과 욕망을 서로 교환하기에 바쁘지만, 좀더 넉넉한 시선으로 이런 모습을 다루면서 웃음을 유발했다.
<하하하>는 이런 변화의 결정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은 술에 취해 있고, 유쾌하게 진솔한 본성을 드러낸다. 이 영화로 홍 감독은 여섯번째 찾아간 칸에서 5전6기로 상을 받았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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