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빛난 이창동 감독
시대와 장소 초월한 존재론적 물음
평범한 인생의 고달픔 영화에 담아
시대와 장소 초월한 존재론적 물음
평범한 인생의 고달픔 영화에 담아
이창동(57)은 역시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황금종려상은 놓쳤지만 시상식 당일인 23일(현지시각) 주최 쪽으로부터 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을 때부터 본상 수상은 예고돼 있었다. 2007년 <밀양>으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데 이어 칸에서 두번째 수상이다. 이로써 이 감독은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임을 다시 한번 확고히 했다.
이 감독이 불과 다섯편의 영화로 거둔 세계적인 명성을 이해하려면, 그의 소설가로서의 이력을 알아야 한다. 얽히고 꼬인 이야기들을 한 줄기로 모아 엮어내는 솜씨는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줄 정도로 탁월하다. 1981년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감독은 교사 소설가로 등단한 뒤 86년 교사 생활을 접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그리고 1993년 <그 섬에 가고 싶다>(박광수 감독)의 각본과 조감독을 맡으면서 어릴 적 꿈이었던 영화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야기꾼으로서 그는 ‘사람’과 ‘사회’라는 관심사를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특히 그의 초점은 평범한 인생의 고달프고 비루한 현실에 집중됐다. “인생이란 뭔가 화려한 것, 거창한 것,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인생이란 구질구질하고 더럽고 고달픈 것의 연속이었다. 끝없는 장애물 경주처럼 결코 그것들을 회피할 수 없었다.”(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에서)
이 감독은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받은 뒤 마흔세 살 늦깎이로 연출한 데뷔작 <초록물고기>로 단숨에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박하사탕>(1999년), <오아시스>(2002년), <밀양>(2007년)과 이번 <시>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사회의 약자, 운명의 피해자들을 영화에서 다뤄왔다. 이창동 영화 속의 인물들은 냉혹한 현실 앞에 좌절하지만, 결코 희망과 구원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의 작품세계는 2000년 이후 분수령을 맞는다.
2000년 이전 작품들이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 바탕으로 삼았다면, 2000년 이후 영화들은 한국적 현실을 토대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존재론적 물음들을 담고 있다. 이런 주제의식에 세계적 영화제들이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 감독의 영화는 흥행 면에선 크게 성공한 편은 아니지만 매번 평단의 찬사가 이어졌다. <초록물고기>는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신인감독상·각본상과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감독상, 캐나다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등을 휩쓸었다.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아 이 감독과 칸의 연을 맺어준 <박하사탕>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뽑혔고, 체코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국내에선 대종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을 받았다. 그리고 <오아시스>부터 세계적인 이름을 얻었다. 이 영화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네치아(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이 감독은 감독상을, 뇌성마비 장애인 역을 신들린 듯 연기한 문소리는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하던 그는 문화부 장관 시절 스크린쿼터 축소를 단행해 영화인들과 맞서기도 했다. 1년4개월 동안 장관을 지낸 뒤 그는 5년 만에 <밀양>을 들고 영화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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