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너무 꽉 차버린 여백의 순간

등록 2010-05-30 17:43

영화 ‘싱글맨’
영화 ‘싱글맨’
[남다은의 환등상자] 싱글맨




<싱글맨>의 감독은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던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다. 이 영화의 원작자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1960년대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50대 동성애자 교수인 조지의 삶을 그려낼 때, 그의 나이는 60살이었다. 그리고 2009년, 톰 포드는 자신이 각색을 맡아 그 소설을 영화화한다.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톰 포드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두 남자 모두는 실제로 동성애자다. 둘의 자전적인 경험과 정서가 작품 속에 묻어나올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자 감독들이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입체적인 접근과 절절한 정념을 상상하게 만든다. 게다가 영국의 뛰어난 배우 콜린 퍼스가 연기 변신을 시도했고, <어바웃 어 보이>에서 또래보다 고독한 소년을 완벽히 소화했던 니컬러스 홀트가 청년이 되어 출연한다는 정보도 흘려들을 수 없다. 생의 감각을 놓칠 수 없는 남자들의 분투가 핍박받는 자들의 궁상이 아니라, 우아하고 세련되게 묘사되리라는 기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싱글맨>을 구성하는 요소들 각각만 본다면, 최적의 조합이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16년 동안 함께 산 어린 연인 짐이 사고로 죽은 뒤, 조지(콜린 퍼스)는 그의 빈자리를 부둥켜안고 살아간다.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의 현재는 과거의 아련한 기억과 죽음의 충동과 현실에 대한 환멸, 허무로 채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벼랑 끝에 선 그의 일상에 생기 가득하고 아름다운 청년 케니(니컬러스 홀트)가 찾아오고, 그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톰 포드는 성 소수자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발언보다는 그런 현실과 충돌하면서도 생의 충만함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남자들의 섬세하게 흔들리는 내면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미래를 냉소하고 과거 속에서 살면서도 지금, 이 현재의 순간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의 슬픔을 담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걸 영화적으로 극화하기 위해 선택된 장치들이 위에서 언급한 각 구성요소들의 장점을 갉아먹거나 제대로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허술함도 흠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영화가 이야기로도 채워질 수 없는 침묵, 응시, 여백의 순간을 어떻게 감당하고 창조적으로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다. 감독은 그런 순간마다 과잉된 음악을 무작정 밀어넣고 인물들 앞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어떻게든 빈 공간들을 채우려고 하는데, 마치 거기서 영화의 관능성이 탄생한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믿음은 초보감독의 미숙함이거나 패션 디자이너의 착각이다. 영화는 패션화보도, 뮤직비디오도 아니다. 멋지게 보이고 아름답게 들리는 것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꺼내어 소중히 품을 줄 모른다면, 그건 그저 좀더 화려한, 움직이는 사진에 불과하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