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글맨’
[남다은의 환등상자] 싱글맨
<싱글맨>의 감독은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던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다. 이 영화의 원작자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1960년대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50대 동성애자 교수인 조지의 삶을 그려낼 때, 그의 나이는 60살이었다. 그리고 2009년, 톰 포드는 자신이 각색을 맡아 그 소설을 영화화한다.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톰 포드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두 남자 모두는 실제로 동성애자다. 둘의 자전적인 경험과 정서가 작품 속에 묻어나올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자 감독들이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입체적인 접근과 절절한 정념을 상상하게 만든다. 게다가 영국의 뛰어난 배우 콜린 퍼스가 연기 변신을 시도했고, <어바웃 어 보이>에서 또래보다 고독한 소년을 완벽히 소화했던 니컬러스 홀트가 청년이 되어 출연한다는 정보도 흘려들을 수 없다. 생의 감각을 놓칠 수 없는 남자들의 분투가 핍박받는 자들의 궁상이 아니라, 우아하고 세련되게 묘사되리라는 기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싱글맨>을 구성하는 요소들 각각만 본다면, 최적의 조합이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16년 동안 함께 산 어린 연인 짐이 사고로 죽은 뒤, 조지(콜린 퍼스)는 그의 빈자리를 부둥켜안고 살아간다.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의 현재는 과거의 아련한 기억과 죽음의 충동과 현실에 대한 환멸, 허무로 채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벼랑 끝에 선 그의 일상에 생기 가득하고 아름다운 청년 케니(니컬러스 홀트)가 찾아오고, 그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톰 포드는 성 소수자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발언보다는 그런 현실과 충돌하면서도 생의 충만함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남자들의 섬세하게 흔들리는 내면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미래를 냉소하고 과거 속에서 살면서도 지금, 이 현재의 순간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의 슬픔을 담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걸 영화적으로 극화하기 위해 선택된 장치들이 위에서 언급한 각 구성요소들의 장점을 갉아먹거나 제대로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허술함도 흠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영화가 이야기로도 채워질 수 없는 침묵, 응시, 여백의 순간을 어떻게 감당하고 창조적으로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다. 감독은 그런 순간마다 과잉된 음악을 무작정 밀어넣고 인물들 앞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어떻게든 빈 공간들을 채우려고 하는데, 마치 거기서 영화의 관능성이 탄생한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믿음은 초보감독의 미숙함이거나 패션 디자이너의 착각이다. 영화는 패션화보도, 뮤직비디오도 아니다. 멋지게 보이고 아름답게 들리는 것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꺼내어 소중히 품을 줄 모른다면, 그건 그저 좀더 화려한, 움직이는 사진에 불과하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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