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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주성치와 함께라면 ‘다 좋아질거야’

등록 2010-06-06 20:44

주성치와 함께라면 ‘다 좋아질거야’
주성치와 함께라면 ‘다 좋아질거야’
허지웅의 극장뎐 /

내게도 비디오 대여점의 긴 머리 아르바이트 직원에 관한 낭만적인 추억이 있다. 나는 직원에게 떡볶이를 사다 주었고 직원은 내 연체료를 탕감해 주었다. 아쉬운 건 그가 긴 머리의 아저씨였다는 사실이다. 형님이 검사라는 사실을 늘 강조했던 그가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연이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아저씨는 늘 주성치 영화를 틀어두었다. 한 번은 “사장이 행사 들어온 <쥬라기 공원 3> 돌리라고 했는데 내가 마음대로 <홍콩 레옹> 틀었다”며 자랑까지 했다. 그게 그러니까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아저씨는 요즘 뭘 하는지, 대여점은 그 고시원 건물 1층에 여전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주성치 영화를 볼 때면 빼놓지 않고 그 아저씨 생각이 난다.

주성치의 <서유쌍기: 월광보합, 선리기연>이 15년 만에 극장을 다시 찾았다.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베스트는 대개 서로 다르다. 그러나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을 빼놓고 주성치 영화를 논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희극지왕>의 산만하고 애틋한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지만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월광보합>의 주성치 성기에 불붙는 장면을 보다가 혀를 깨물어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정말 본 적이 있다. <선리기연>의 마지막 20분은 어떤가. 내장의 위치를 뒤흔들어 바꾸어 놓을 만큼 강력하다.

새삼스럽게도, 주성치 영화는 대단히 작위적이다. 허무맹랑한 몸짓과 소모적인 말장난으로 가득하다. 서사의 허술함으로 따지자면 주성치 영화보다 헐거운 이야기는 주성치 영화밖에 없다. 대부분이 저예산의 삼류 패러디 영화였고 그나마 참신한 설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주성치가 출연한 작품은 그가 무슨 캐릭터를 연기했든 간에 관계없이 ‘주성치 영화’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다.

사실 주성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거기서 드라마의 무결성이나 짜임새를 추적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수십 편에 이르는 주성치 영화가 일관되게 고수해온 정서 그 자체다. 우리는 주성치 영화에서 가난하고 초라한 사람들,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해받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주성치는 영화 속에서 이들을 대변한다. 이 몹쓸 고된 순간들을 이겨낼 방법은 결국 웃음밖에 없다며 과장된 몸짓으로 즐겁게 ‘살아나간다’. 그렇게 우리들은 주성치 영화로부터 마술과도 같은 위로와 낙관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성룡과 달리 주성치는 버스터 키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슬픔을 웃음으로 껴안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가냘픈 위악을 떠는 모습을 보면 키턴의 진정한 적자는 주성치가 아닐까 싶다. <서유쌍기>의 재개봉을 경축하는 이 글의 마지막에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주성치와 함께라면’이 필요하겠다. 괜찮아, 모든 건 다 좋아질 거야. 주성치와 함께라면. 뽀로뽀로미 뽀로뽀로미,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년!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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