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 2’의 매혹, 바로 견자단
허지웅의 극장뎐 /
아! 견자단(전쯔단). 견자단을 떠올리면 가슴이 설렌다. 63년생임에도 결코 빠지지 않는 젖살마저, 이제는 근육으로 보인다. 성룡(청룽)의 능청에 원표(위안뱌오)의 점프력에 이연걸(리롄제)의 빠르기에 견자단의 발차기를 합치면 악귀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견자단이 대세다. 견자단이 최고다. 어우 견자단!
언제까지나 이연걸에 뒤진 2인자로 기억될 것 같았던 견자단의 전성기는 엽위신(예웨이신) 감독과 함께 시작됐다. <살파랑>과 <용호문> <도화선> 그리고 <엽문>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엽위신 감독과 견자단의 협업이 시시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엽위신은 견자단을, 견자단은 엽위신을 만나는 것으로 서로의 가장 훌륭한 이력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한 <살파랑>은 같은 해 나온 두기봉(두치펑)의 <흑사회>와 함께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작품이었다. 저 두 편은 <무간도> 이후 홍콩 누아르에 새로운 개성과 활로를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살파랑>은 누아르의 비정함과 무협의 타격감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엽위신-견자단 조합의 인상적인 출발을 알렸다. 누아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강호의 난투극은 관객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견자단 무술의 강점은 화려함에 있다. 정통 무술과 이종격투기의 강점을 고루 가져온 견자단의 화려한 몸짓은 인간과 인간의 몸이 부딪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정교하고 파괴적인 합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견자단의 무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텍스트다. 그 합을 읽고 따라가면서 타격감을 체험하다 보면 관객은 어느 순간 황홀경의 영역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엽위신-견자단, 여기에 홍금보(훙진바오)가 더해진 조합(<살파랑>에 출연했던 홍금보는 <엽문> 1편에선 무술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다)의 <엽문> 시리즈는 그간의 작품들과 조금 다르다. 견자단 무술이 고수해온 예의 화려함은 ‘가장 적은 동작으로 빠르게 상대를 제압하는’ 영춘권의 방식으로 재편됐다. 그래서 동작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게 전보다 쉽고 편하다. 영춘권의 연타가 얼핏 초고속 안마 같아 보여 아쉽다는 사람도 있지만, 무술의 파괴력이 아닌 기술적인 면모에 눈이 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전한 황홀경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리즈의 흥행으로 한동안은 이소룡(리샤오룽)의 스승, 엽문 이야기가 스크린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왕가위(왕자웨이)가 연출하고 양조위(량차오웨이)가 엽문을 연기하는 <일대종사>가 있고, 홍금보가 엽문의 스승을 연기하는 <엽문전전>이 대기중이다.
사실 견자단 보는 재미를 제외하면 <엽문> 시리즈의 만듦새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전편은 ‘왜놈’, 2편은 ‘양놈’을 두고 민족주의 감성에 호소해 이야기를 쉽게 풀려는 기색이 짙기 때문이다. 특히 <엽문 2>의 경우 견자단과 홍금보가 대립하는 전반부와, 영국 복서와 대결하는 후반부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구별돼 흡사 서로 다른 두 편의 영화처럼 보일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임달화(런다화) 캐릭터의 굴욕에 가까운 소극적 활용이 너무 안타까웠다. 엽위신 감독 그러는 거 아님. 그래도 <엽문 2>를 놓칠 수 없는 이유라면 역시 <살파랑> 이후 오랜만에 재연되는 견자단과 홍금보의 대결을 꼽을 수 있겠다. <살파랑>에선 저 역사에 남을 견자단과 오경의 대결 시퀀스가 더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엽문 2>에서 홍금보와 견자단의 원탁 대결을 보는 재미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볼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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