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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인간 난자+여러생물 DNA…너는 누구냐

등록 2010-06-23 21:59

영화 ‘스플라이스’
영화 ‘스플라이스’
주목할만한 새 영화 ‘스플라이스’
금기의 생명체 ‘드렌’ 통해 인간의 오만과 모순 드려내

생화학자 커플 클라이브(에이드리언 브로디)와 엘사(세라 폴리)는 윤리와 연구 사이에서 갈등한다. 신의 영역인 생명의 존엄함과 과학자로서의 탐구욕 사이의 심리적 다툼은, 무모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뱀의 유혹에 이브가 넘어가고 이브의 설득에 아담이 동조하는 것처럼, 클라이브는 엘사에게 이끌린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드렌’이다. 영화 <스플라이스>의 제목은 여러 종이 결합해 탄생한 생명체라는 뜻, 드렌을 가리킨다.

드렌은 인간 여자의 난자에 각종 생물로 뒤범벅된 변종 디엔에이(DNA)가 주입돼 만들어졌다. 수정이 이뤄지기 전부터 불안과 긴장은 증폭된다. 신을 속이고 선악과를 따먹은 태초의 인류를 숨어 보는 것처럼 관객은 마음을 졸인다. 인공 자궁에서 예정일보다 먼저 뛰쳐나온 드렌은 조류의 다리에 전갈의 꼬리를 달고 미간이 넓은 인간의 얼굴로 태어난다.

드렌의 모습과 성장 과정엔 ‘에스에프(SF)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기상천외한 재주가 그대로 담겨 있다. 클라이브와 엘사가 먹이고 가르치며 키워낸 드렌은 어린 엘사가 입었던 예쁜 원피스를 입고 인형을 품에 안고 논다. 꼬리의 독침을 들이대며 때때로 야성을 폭발시키는 드렌에게, 클라이브와 엘사는 전전긍긍하면서도 죽여버릴 결심은 매번 무뎌진다. 양육에 지쳐버린 부모라도 사랑으로 아이의 모든 걸 감싸안은 듯한다. 급기야 사춘기 소녀인 양 드렌은 아버지를 남자로 바라본다. 이 지점에서 준비된 파국이 본격화하고, 마침내 드렌은 성 변환을 거쳐 포악한 괴수로 돌변한다.


영화 ‘스플라이스’
영화 ‘스플라이스’
<큐브>(1997년)로 세계 영화계의 환호를 받은 나탈리 감독의 독창적 상상력은 <스플라이스>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 영화는 다른 괴수영화의 전통적 설정과 달리 인간의 손을 벗어난 괴수가 비극적 사건을 벌이는 데 주목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괴수에게 도리어 구속되는 인간의 모순적 모습을 조명한다. 또한 클라이브·엘사와 드렌의 관계 속에서 아동 성장기의 프로이트적 설정,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을 과감히 대비시키고 엮는다. 어린 드렌을 그려낸 시지(CG)를 비롯해 성숙한 드렌을 기묘한 모습으로 형상화한 특수효과는 그 자체가 새 생명을 창조해낸 과학자의 솜씨와 포개진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세계의 바탕이랄 수 있는 인간의 무모한 욕심에 대한 비관적 시선이 여실히 드러난다. <큐브> 이래로 나탈리 감독은 개개의 인간, 또는 인간의 무리들이 지닌 이기적 욕망이 어떤 비극을 빚어내는지 담담히 스크린에 담아왔다. <큐브>에서 극한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개인의 이기심이 파국을 불렀다면, <스플라이스>에선 신의 영역에까지 도달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이 야기할 종말을 암시한다.

다만 몇몇 장면은 한국 영화 관객들에게 불편하게 다가갈 성싶다. 감독의 의도가 분명할뿐더러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라도 불가피했겠지만, 근친상간적 묘사는 명백히 혐오스럽고 불쾌하다. 그것이 인간의 괴물적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긴 해도. 7월1일 개봉.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 ‘SF 천재’ 나탈리 감독

“유전공학·과학만능주의 경고”

“황우석 사건 알고 있다”


빈센조 나탈리 감독
빈센조 나탈리 감독
“괴물이 더 인간적이고 인간이 더 괴물같은 행동을 한다는 게 중요한 콘셉트죠.”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빈센조 나탈리(사진) 감독은 영화 <스플라이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어느 한국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스플라이스>에서 생명 창조에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한 행태는 가히 괴물적이다. 거짓, 폭력, 살인, 강간, 전쟁 등 인간의 비인간적 행태는 우리 곁에 상존한다.

영화에서 나탈리 감독이 특히 경고하는 것은 과학만능주의의 비극적 결말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가장 위험한 건, 인간 자신이 그토록 강력하고 엄청난 기술을 책임 있게 다룰 수 있느냐죠. 생명과학, 유전공학이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많긴 하지만 한 번 기술이 만들어지고 진보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치명적인 문제겠죠.”

‘황우석 박사를 아느냐’고 묻자, 영어로 옮기기 전에 반응했다. “신문기사를 읽어서 황우석 박사 얘기를 알고 있어요. 깊이 있게 말할 순 없지만, 황우석 박사 사건과 이 영화가 비슷한 점이 있죠. 실험이 비밀리에 진행된 부분이 첫째고 또 실험 과정이 제대로 모니터링되지 못한 부분도 그렇죠.” 그래서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결말은 비극이다. 그는 특히 최근 미국의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고를 언급하며 “과학기술의 상업화가 문제”라고 했다.

<큐브>(1997년)나 이번 <스플라이스>에서나 나탈리 감독의 이런 비관론이 드러난다. 그 역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저 자신”이라는 말로 자신의 비관론을 설명했다. “나의 적을 찾아보려면 멀리서 찾을 것 없이, 거울을 보면 돼요. <큐브> 역시 그런 콘셉트를 담고 있고 <스플라이스>도 그렇죠.”

그렇다 해도 <큐브>에서 예상 밖에 자폐증을 앓는 이가 살아남고 <스플라이스>에서 새 생명 탄생이 암시되는 건 한가닥 희망의 실마리가 아닐까? 그는 “비터 스위트(bittersweet)”라는 형용사를 썼다. 인간 욕망의 지옥 속에서도 가장 약한 자가 살아남고 작은 생명의 가능성을 남기는 것이 ‘달콤 씁쓸한’ 결말이라는 것이다.

<스플라이스>에서 가장 논란이 될 부분은 아무래도 성 묘사일 듯하다. 그는 우선 “성은 인간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에 살펴보고 싶었다”며 “신화 속에서 신화적 존재와 인간이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 얼마나 선을 넘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감독으로서 여태껏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줄 때 희열을 느낀다”며 “섹스 장면이 이 영화 제작 동기 중 가장 컸고 가장 보여주고자 했던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상상력의 원천을 물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새로운 걸 창조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거겠죠. 단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제 영화 제작동기가 순수하다는 거죠. 한 번도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만든 적은 없어요. 내가 가난한 감독이라는 게 증거죠.(웃음)”

김진철 기자,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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