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플라이스’
주목할만한 새 영화 ‘스플라이스’
금기의 생명체 ‘드렌’ 통해 인간의 오만과 모순 드려내
생화학자 커플 클라이브(에이드리언 브로디)와 엘사(세라 폴리)는 윤리와 연구 사이에서 갈등한다. 신의 영역인 생명의 존엄함과 과학자로서의 탐구욕 사이의 심리적 다툼은, 무모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뱀의 유혹에 이브가 넘어가고 이브의 설득에 아담이 동조하는 것처럼, 클라이브는 엘사에게 이끌린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드렌’이다. 영화 <스플라이스>의 제목은 여러 종이 결합해 탄생한 생명체라는 뜻, 드렌을 가리킨다.
드렌은 인간 여자의 난자에 각종 생물로 뒤범벅된 변종 디엔에이(DNA)가 주입돼 만들어졌다. 수정이 이뤄지기 전부터 불안과 긴장은 증폭된다. 신을 속이고 선악과를 따먹은 태초의 인류를 숨어 보는 것처럼 관객은 마음을 졸인다. 인공 자궁에서 예정일보다 먼저 뛰쳐나온 드렌은 조류의 다리에 전갈의 꼬리를 달고 미간이 넓은 인간의 얼굴로 태어난다.
드렌의 모습과 성장 과정엔 ‘에스에프(SF)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기상천외한 재주가 그대로 담겨 있다. 클라이브와 엘사가 먹이고 가르치며 키워낸 드렌은 어린 엘사가 입었던 예쁜 원피스를 입고 인형을 품에 안고 논다. 꼬리의 독침을 들이대며 때때로 야성을 폭발시키는 드렌에게, 클라이브와 엘사는 전전긍긍하면서도 죽여버릴 결심은 매번 무뎌진다. 양육에 지쳐버린 부모라도 사랑으로 아이의 모든 걸 감싸안은 듯한다. 급기야 사춘기 소녀인 양 드렌은 아버지를 남자로 바라본다. 이 지점에서 준비된 파국이 본격화하고, 마침내 드렌은 성 변환을 거쳐 포악한 괴수로 돌변한다.
<큐브>(1997년)로 세계 영화계의 환호를 받은 나탈리 감독의 독창적 상상력은 <스플라이스>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 영화는 다른 괴수영화의 전통적 설정과 달리 인간의 손을 벗어난 괴수가 비극적 사건을 벌이는 데 주목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괴수에게 도리어 구속되는 인간의 모순적 모습을 조명한다. 또한 클라이브·엘사와 드렌의 관계 속에서 아동 성장기의 프로이트적 설정,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을 과감히 대비시키고 엮는다. 어린 드렌을 그려낸 시지(CG)를 비롯해 성숙한 드렌을 기묘한 모습으로 형상화한 특수효과는 그 자체가 새 생명을 창조해낸 과학자의 솜씨와 포개진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세계의 바탕이랄 수 있는 인간의 무모한 욕심에 대한 비관적 시선이 여실히 드러난다. <큐브> 이래로 나탈리 감독은 개개의 인간, 또는 인간의 무리들이 지닌 이기적 욕망이 어떤 비극을 빚어내는지 담담히 스크린에 담아왔다. <큐브>에서 극한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개인의 이기심이 파국을 불렀다면, <스플라이스>에선 신의 영역에까지 도달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이 야기할 종말을 암시한다.
다만 몇몇 장면은 한국 영화 관객들에게 불편하게 다가갈 성싶다. 감독의 의도가 분명할뿐더러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라도 불가피했겠지만, 근친상간적 묘사는 명백히 혐오스럽고 불쾌하다. 그것이 인간의 괴물적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긴 해도. 7월1일 개봉.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영화 ‘스플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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