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일 감독 ‘영도다리’
전수일 감독 ‘영도다리’
고통과 쓸쓸함 담담하게 관찰
고통과 쓸쓸함 담담하게 관찰
인화(박하선)는 남산만한 배를 움켜쥐고 신음한다. 제 방 침대에서 영도다리를 거쳐 출산의 고통을 겪는다. 아이를 낳자마자 망연한 표정의 열아홉살 소녀는 양육권을 포기하고 입양 보내는 데 지장을 찍어 동의한다. 그러고는 다시 일상이다. 비루하고 적막한 일상은 본래부터 희망 없고 외롭고 쓸쓸했다. 차가운 폐허이면서도 동시에 안온한 고향인 영도다리를 중심으로, 인화는 방에서 배에서 다리에서 바닷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고독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고통스러워하진 않는다. 원래 그랬으니까, 다른 건 모르니까, 망각과 상실에 대한 인지는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으니까.
문득 소녀의 마음을 두드리는 건 포기한 분신, 떠나보낸 아기이다. 아랫배에 선연히 남은 출산의 상흔과 젖앓이, 가슴을 적시는 모유는 일종의 각성제다. 비로소 소녀는 어른이 되어간다. 잃어버린 것,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그래서 소녀는 어른이 되기 위해 떠나기 시작한다. 입양된 아이를 찾아 떠나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첫걸음에 다름없다.
영화 <영도다리>는 부산, 칸, 베니스, 모스크바, 낭트, 도빌, 카를로비바리(체코), 프리부르(스위스), 라스팔마스(스페인) 영화제에서 늘 주목해 온 전수일 감독의 7번째 장편이다. 이번에도 독립영화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중심부 서울과 동떨어진 부산에 천착한 감독답게 주변부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 전체를 꿰뚫는 정서는 쓸쓸함이다. 공간은 철저하게 가로막혀 나뉘어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적 일상은 마치 풍경화처럼 무표정하게 제시된다. 냉장고처럼 두칸으로 구분된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때리고 맞는 여고생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무표정하고 조용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잔잔한 풍경 속에서 아이들은 버려졌고 청춘들은 방황하고 어른들은 절망한다. 개인의 고독과 문제적 사회현상은 구분되지 않고 얽혀 있다. 연출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따라가며 무심하게 관찰하는 시선에 가깝다. 그래서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광경이라도 은근히 발산하는 아름다움은 퇴색하지 않는다. 7월1일 개봉.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 사진 마운틴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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