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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말’이 사라지자 더욱 빛나는 청춘

등록 2010-06-27 17:51

<청설>
<청설>
[남다은의 환등상자] 청설
굳이 분류하자면, 대만에서 온 <청설>은 얼마 전 이 지면에서 다룬 일본 영화 <하프웨이> 계열의 청춘 로맨스다. 당연히 어느 정도 상투성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장르다. 그 상투성의 변주가 이런 영화들의 성패를 가르고 그런 면에서 <청설>이 성공사례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날카롭게 노려봐도 이 영화는 어느 순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구석이 있는데, 그건 전적으로 인물들의 얼굴 때문이다. 거창하게 영화와 얼굴에 대해 논하려는 건 아니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유치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외모적 취향을 떠나) ‘아, 정말 예쁘다’고 감탄하지 못하는 건 어딘가 보는 이의 심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배우들의 타고난 외모가 우리가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풋풋함과 싱그러움의 전형인 건 맞지만, 그 젊음의 얼굴이 다른 청춘 로맨스에 비해 유달리 돋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감정을 그대로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표정과 제스처와 눈빛을 통과해서 그 감정의 형상이 구현되는 것 같다. 그러니 그 얼굴 위로 들어왔다 떠나는 섬세한 변화들에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부모가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 일을 돕는 티엔커는 어느 날 수영장에 배달을 갔다가 청각장애인 수영선수 샤오펑과 동생 양양을 만난다. 한눈에 보기에도 밝고 사랑스러운 양양에게 푹 빠져버린, 그녀만큼이나 건강한 청년 티엔커. 다행히 수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티엔커는 양양에게 접근하지만, 언니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양양의 현실이 사랑을 가로막는다. 각자의 꿈을 꾸는 세 인물이 줄곧 수화로 교감을 한다는 점, 그래서 청춘물을 지탱하던 가볍고 감상적인 수다들이 응시와 손짓의 활달함으로 대체된다는 점이 신선하다. 특히 티엔커와 양양이 서로에 대한 달뜬 마음을 열심히, 그러나 고요히 수화로 표현할 때, 그 빈자리에는 뒤죽박죽 소란스럽게 엉킨 세상의 소음들이 확 들어서는데, 이 대비에서 때때로 묘한 감흥이 생긴다. 순진무구한 동화와 시끄러운 현실이 충돌해서 상처를 입힌다기보다는 한 세계 안에서 서로를 모른 체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현실로부터 차단되어야만 성립 가능한 일련의 청춘 로맨스물의 기질이 영화적으로 형상화된 순간이랄까.

들여다보면 각각의 인물들이 차근차근 넘어서야 할 곡절도 많고 나름의 야심 찬 반전도 갖춘 이야기임에도 이토록 평이하게 느껴지는 건 착하고 이해심 많은 캐릭터들과 그 선함에 상을 주는 결론 때문이겠다. 노골적으로 눈 딱 감고 이 아름다운 젊음을 훔치고 싶지, 라고 말하는 영화에 대고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설교할 필요는 없다. 들리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애쓴 유일한 메시지일 텐데, 어쨌든 이 여름, 100분 넘게 청춘의 화사하고 다채로운 얼굴빛만은 제대로 보았다. 이상하게도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그저 그 얼굴들을 즐겼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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