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셉션>
<인셉션>은 할리우드의 역량으로 제공 가능한 거의 최고 수준의 아드레날린이다. 물론 이 ‘제공 가능한’이라는 짧은 단어 안에는 거대 제작 시스템과 작가적 고결함 사이의 길고 짜증스런 절충과 타협의 시간이 생략돼있음을 잊지 말자. 이 영화는 당신의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심장의 박동을 빠르게 하고 모세혈관을 수축하게 만들어 혈압을 상승시킬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관객에게 효과를 발휘할 만한, 믿을 만한 소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극장에 당신의 영혼까지 챙겨갈 필요는 없다. 그 방면이라면 박쥐 영웅이 나오는 블루레이 타이틀을 한 번 더 꺼내보거나 그냥 집에서 묵상을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지일 것이다. <인셉션>은 감독의 전작 <다크나이트>와는 달리 어깨에 힘이 빠진 소품이다. 옳고 그름, 영웅과 악당을 둘러싼 실천 차원의 딜레마 같은 화두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셉션>의 플롯에는 야심이 없다. 여기에는 오직 두 가지 갈등만이 존재한다. 인셉션(꿈속에 들어가 기억을 주입하는 작업)을 통해 상대가 어떤 결정(물론 역시 관객 입장에선 소박한)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미션에 성공해야만 주인공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다냐고? 그게 다다.
조지프 고든레빗의 근사한 딱딱함을 제외하면, 불행하게도 캐릭터를 보는 재미 또한 별게 없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셔터 아일랜드 섬에서 탈출한 뒤 재혼을 거쳐 이 직업으로 바로 갈아탄 듯 보이며 엘런 페이지는 <주노>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킬리언 머피와 와타나베 켄, 마이클 케인은 별 욕심 없이 배트맨 시리즈의 인연으로 출연했음이 확실하며, 마리옹 코티야르는 영화 속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드는 기시감과 그에 따른 (영화와 관련 없는) 잔재미가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셉션>은 왜 그렇게 거대해 보이는 걸까. 단지 꿈을 소재로 한 <오션스 일레븐>이나 <미션 임파서블>이라 폄하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그저 화려한 공상에 그치는지, 혹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착각할 만큼 확고한 뼈대 위에 뿌려지는지에 관한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눈은 즐겁지만 당신의 좌뇌와 우뇌는 영화가 끝난 후 무엇을 먹어야 성공적인 외출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토론하게 될 것이다. 후자라면 방금 눈으로 본 광경에 멍해 있다가, 그 합리를 이해하려 애쓰다가, 다시 멍해지는 걸 반복하느라 애인의 손을 잡아줄 여유도 잊어버린다.
요컨대 <인셉션>은 야심 없이 소박한 플롯을 완벽한 체계 안에서 작동하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 꿈을 정말 꿈처럼 그려낸다. 우리 모두 꿈을 꾸는 동안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허황된 것이 아닌 실제라 여기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 영화의 허무맹랑함이 바로 그렇다. 이건 정말 진짜 같다!
<인셉션>이 거의 강박에 가까울 만큼 고집하는 건 꿈을 체계적으로 형상화해내는 작업이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미지와, 보는 내내 그것을 이해하려 애쓰는, 그리고 놀랍게도 만족할만한 답변을 얻고 극장을 나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거대하고 촘촘하다는 수사가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정말 오랫동안 회자될 영화의 등장이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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