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솔트’
로맨스도 없는 정통 스파이물 ‘솔트’
냉전 체제에 기반한 설정은 ‘불편’
냉전 체제에 기반한 설정은 ‘불편’
<솔트>에서 앤절리나 졸리는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액션을 다 쏟아냈다. 일대일 ‘맞짱’은 물론이고 여러 패거리에 둘러싸여서도 물러서지 않고 주먹질, 발길질을 하며 날아다닌다. 뚝딱거리면 금세 강력한 무기도 만들어내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폐쇄된 공간을 약고 빠른 생쥐처럼 잘도 빠져나온다. 추격신도 눈을 홀린다. 달리는 커다란 트럭 위로 펄쩍펄쩍 뛰어내리는 건 예삿일이다.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낚아채 타고 달아나는 화끈한 액션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졸리는 <솔트>로 액션영화에서 성의 구분을 뛰어넘은 최초의 여배우가 될 성싶다.
시종일관 정신을 쏙 빼놓고 볼 수밖에 없다. 숨쉴 틈을 주지 않고 도망과 추격, 음모와 배신, 위기와 파국이 이어진다. 긴장감의 강약 조절은 없다. 스크린에 시선이 사로잡혀 현실감마저 잃어버릴 판이다.
그러나 <솔트>의 이야기는 현실과 매우 맞닿아 있다. 냉전 시대에 뿌리를 둔 이른바 ‘데이-엑스(X)’ 가설이 영화의 바탕을 이룬다. 오랜 시간 미국 시민으로 훈련된 구 소련의 스파이들이 미국에 잠입해 살아가며 미국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이다. 미국인 입장에서 이런 스파이들은 자신의 이웃, 친구, 심지어 아내일 수도 있다는 것. 더구나 직업으로 치면 나토 사령부에서 일하는 고위 간부일 수도 있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암약하는 구 소련 스파이들에 둘러싸여 있을 수 있다는 냉전적 상상력은 미국인들에게 막연한 공포감을 자아낼 훌륭한 영화의 소재일 터다.
앤절리나 졸리가 연기한 에블린 솔트는 거미생물학자인 남편을 둔 시아이에이 요원이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대통령 암살이 임무인 구 소련의 스파이 첸코프다. 첸코프는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지만, 궁극의 구 소련 스파이들의 위업에는 동참하지 않는다.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정의를 위해선지는 불확실하다. 어쨌든 첸코프의 배신으로 미국은 구원받는다.
흥미로운 건, 다른 유사 영화에서 미국의 적들은 미국을 직접 공격하려 하지만 <솔트>에선 미국의 또다른 적들을 미국이 공격한 것처럼 위장해 미국을 향한 여타 적국의 공격을 유도해내려 한다는 것. 또한 별다른 로맨스가 등장하지 않기에, 무미건조하면서도 거친 긴장감이 더 생생한 인상을 준다.
다만 한국 관객에게는 뭔가 찝찝하고 불편한 느낌이 계속 남을 수 있다. 영화 들머리에 “간나새끼”를 연발하며 솔트를 고문하는 북한군의 모습들. 정전체제 속에 아직도 끝나지 않고 오히려 근래 들어 더 냉랭해진 한반도 대결 구도들이, 액션신에 정신을 쏙 빼놓은 뒤에도, 고질적인 체기처럼 거치적거린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영화인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