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랙’
조던 스콧 감독 ‘크랙’
영국 기숙학교 ‘우상’ 미스 G와
전학 온 외부 소녀의 진실 대결
리들리 스콧의 딸, 놀라운 데뷔작
에바 그렌의 매혹적 연기 빛나 젊음의 동인은 열망이다. 열망은 상상 속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든다. 하지만 모델이 있어야 쉬운 법. 젊은이들이 아이돌에 푹 빠지는 것도 그런 탓이다. 조던 스콧 감독의 작품 <크랙>은 언뜻 견고해 보이는 ‘아이디어-모델-현실’ 삼각형이 삐걱거리는 10대 소녀들 이야기다. 1930년대 영국 스탠리 섬의 여학생 기숙학교. 섬에는 마을이 하나 있을 뿐. 뭍으로 나가려면 나룻배를 타야 한다. 엄격한 규칙이 지배하는 그곳에 체조선생 미스 지(G)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여섯 명의 소녀가 원을 그리고 있다. “얘들아, 우린 천사야. 독수리지. 다이빙은 하늘을 나는 거야. 획일적 관습의 족쇄를 풀어버려! 모든 걸 떨쳐내고 바람에 몸을 맡겨! 천상과 지상의 중간에 있는 거야. 관습은 이제 무의미해.” 얼짱인데다 제자의 기를 한껏 북돋워주는 미스 G는 소녀들의 우상이다. 끓는 피를 억누른 채 단지 기숙사와 교실을 오가며 미래를 탐색하는 그들이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바람직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처녀의 몸으로 여자를 태우지 않는다는 배를 우겨 타고 파리, 인도, 콩고 등 세계 곳곳을 누빈 여걸인 것을. 게다가 햇빛이 좋은 날에는 소녀들을 따분한 꽃꽂이 교실에서 불러내고, 달 밝은 밤이면 자는 아이들을 깨워 달밤 수영을 시키는 환상이기도 하다.
늘 그렇듯이 이걸로는 얘기가 안 된다. 자족적인 기숙학교에 전학생이 오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농부와 사랑에 빠져 도피 여행을 한 바 있으며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스페인 출신의 백작소녀 피아마가 유배를 받아 오게 된 것. 잔잔한 호수와 같던 1+6 서클에 피아마는 풍덩 던져진 돌이었다. 미스 G가 말하는 여행지를 실제 다녀온 그한테 미스 G의 이야기는 어설펐던 것. 결국 베스트셀러에서 읽은 것을 자신이 겪은 것처럼 들려주다가 들통이 난다.
실상 미스 G는 공황장애를 가진 인물로 그 섬을 떠나보지조차 못했던 것. 미스 G한테 피아마는 또다른 질투와 욕망의 대상이 된다. 미스 G를 우상으로 삼았던 여섯 소녀들한테 피아마를 바라보는 미스 G의 시선은 견딜 수 없는 일. 그로부터 미스 G-소녀들이 만든 욕망의 삼각형이 피아마-미스 G가 만들어낸 또다른 삼각형과 부닥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가짜와 진짜 욕망이 격돌하니 드라마는 당연히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하지만 영화의 궁극은 성장담이다. 아픔을 겪으면서 자라는 게 10대들. 영원할 것 같던 학교가 지나고 나면 몇년에 불과하고 우상 같던 교사가 똑같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조던 스콧 감독은 올해 칸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로빈 후드>의 감독 리들리 스콧의 딸. 이 영화는 프라다, 나이키 등 광고를 연출하고 다른 감독들과 함께 옴니버스 단편영화를 만들며 나름 감독 수업을 마친 그의 데뷔작이다. 비주얼 감각과 섬세한 연출이 남다르다. 스코틀랜드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 질투, 선망, 욕망이 묘하게 뒤섞인 소녀들의 모습을 여실하게 잡아냈다. 부전여전일까. 오히려 아버지를 뛰어넘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국에서도 그런 사례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
미스 G를 맡은 에바 그렌의 신들린 듯한 연기는 정말 볼만하다. 자족적인 기숙학교에서 여왕벌처럼 당당하다가 외부 소녀의 등장으로 허물어져가는 공황증 교사의 불안감을 기가 막히게 풀어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2002)로 데뷔한 에바 그렌은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2005)에서 여주인공을 맡았고 2006년 <007 카지노 로얄> 본드걸로 출연했으며, 2007년 <황금 나침반>에서 니콜 키드먼과 연기 대결을 벌인 바 있다. 이번에 리들리 스콧의 딸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에서도 주역을 맡음으로써 그의 연기 실력이 대를 이어 인정받고 있음을 입증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마운틴픽쳐스 제공
전학 온 외부 소녀의 진실 대결
리들리 스콧의 딸, 놀라운 데뷔작
에바 그렌의 매혹적 연기 빛나 젊음의 동인은 열망이다. 열망은 상상 속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든다. 하지만 모델이 있어야 쉬운 법. 젊은이들이 아이돌에 푹 빠지는 것도 그런 탓이다. 조던 스콧 감독의 작품 <크랙>은 언뜻 견고해 보이는 ‘아이디어-모델-현실’ 삼각형이 삐걱거리는 10대 소녀들 이야기다. 1930년대 영국 스탠리 섬의 여학생 기숙학교. 섬에는 마을이 하나 있을 뿐. 뭍으로 나가려면 나룻배를 타야 한다. 엄격한 규칙이 지배하는 그곳에 체조선생 미스 지(G)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여섯 명의 소녀가 원을 그리고 있다. “얘들아, 우린 천사야. 독수리지. 다이빙은 하늘을 나는 거야. 획일적 관습의 족쇄를 풀어버려! 모든 걸 떨쳐내고 바람에 몸을 맡겨! 천상과 지상의 중간에 있는 거야. 관습은 이제 무의미해.” 얼짱인데다 제자의 기를 한껏 북돋워주는 미스 G는 소녀들의 우상이다. 끓는 피를 억누른 채 단지 기숙사와 교실을 오가며 미래를 탐색하는 그들이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바람직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처녀의 몸으로 여자를 태우지 않는다는 배를 우겨 타고 파리, 인도, 콩고 등 세계 곳곳을 누빈 여걸인 것을. 게다가 햇빛이 좋은 날에는 소녀들을 따분한 꽃꽂이 교실에서 불러내고, 달 밝은 밤이면 자는 아이들을 깨워 달밤 수영을 시키는 환상이기도 하다.
영화 ‘크랙’
하지만 영화의 궁극은 성장담이다. 아픔을 겪으면서 자라는 게 10대들. 영원할 것 같던 학교가 지나고 나면 몇년에 불과하고 우상 같던 교사가 똑같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영화 ‘크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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