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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허지웅의 극장뎐] 함량 미달 팬클럽 영화 ‘이제 그만’

등록 2010-08-01 18:45

 <고사 2>
<고사 2>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저 촬영장의 공기마저 돈으로 환산해 세금으로 물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게 만드는 영화를, 살다 보면 만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고사 2>에서 우리는 영화적 경험 대신 지금 이 시간 얼마나 많은 것이 낭비되고 있는지 공감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 급기야 상영관 내의 다른 관객들과 일종의 피해자 의식을 공유한 채 서로의 낭비된 시간을 염려하며 잠깐 마주치는 눈길에도 따뜻한 마음을 담고, 누가 의자를 걷어차더라도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아량을 가질 수 있으며, 영화가 끝나면 모두들 어깨동무를 한 채 권진원의 ‘살다 보면’을 흥얼거리면서 극장을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사 2>는 기존 한국 공포영화가 가진 가장 나쁜 버릇들을 버무린 결과물이다. 이 영화 저 영화에서 구걸하듯 가져온 설정이 체계 없이 뒤섞여 있다. 구멍 사이로 배우들이 전부 빠져 죽을 것 같은 헐거운 이야기가 지루하게 펼쳐진다. 별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익숙한 공포 효과가 안일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그나마 과잉된다. 끝에는 반드시 귀신의 억울한 사연이 더해진다.

2000년대 초·중반 믿을 수 없는 도약기를 맞았던 한국 공포영화는 현재 ‘몰락’했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국내 공포영화 기획의 후진성과 저열한 제작환경, 상상력을 담을 수 없는 시나리오 등 복합적인 맥락을 들어 긴 시간 떠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사 2>를 ‘한국 공포영화가 가진 문제점’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시스템의 상식과 효율에 대해 논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고사 2>는 10대 팬클럽 영화다. 개봉 첫날 그룹 티아라가 무대인사에 나섰다. “지연만의 영화가 아니라 티아라의 영화”라며 응원했다. 티아라 소속사인 코어콘텐츠미디어가 제작했으니 그 말도 맞다. 주연을 맡은 황정음도 같은 소속사 배우다.

팬클럽 영화가 나쁜 건 아니다. 슈퍼주니어 멤버 전원이 등장했던 <꽃미남 연쇄테러사건>도 팬클럽 영화다. 그러나 <꽃미남 연쇄테러사건>은 <말죽거리 잔혹사>와 <크로마티 고교> 사이 어느 지점에 자기 자리를 훌륭히 찾은 영리한 영화였다.

<고사 2>의 문제는, 이 영화가 엉망이라는 데 있다. 팬클럽 기획물로서의 욕망만 있지, 정작 영화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이 무심하다. <고사 2>는 포털사이트의 평점 게시판에서 8점 이상을 기록했다. 개봉도 하기 전이었다. 평점을 내린 연령대의 절반이 40대로 나타났다. 이 데이터가 무엇을 적시하는지는 복잡한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추론이 가능하다. 부모님들은 당장 네이버 계정을 확인해 보시라.

<고사 2>는 개봉 첫날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10대 팬클럽 관객과 무대인사 마케팅의 힘이었다. 그해 가장 먼저 개봉하는 공포영화는 반드시 흥행한다는 불문율도 작용했다. 성공한 기획은 그것의 함량과는 관계없이 반드시 되풀이된다. 함량이 모자란 기획이 심지어 성공까지 했다면 되풀이되는 복제품은 더욱 함량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한국 공포영화가 몰락한 가장 큰 이유처럼 말이다. 암담하고 촌스런 일이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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