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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숭늉 맛 나는 마을영화, 맛보실래요?”

등록 2010-08-01 18:50

“숭늉 맛 나는 마을영화, 맛보실래요?”
신지승·이은경 부부 감독의 ‘즐거운 꿈’
영화는 점점 돈벌이 상품이 되고 영화판은 대박에 목을 맨다. 자극적인 것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관객들은 그런 영화에 익숙하다.

이러한 악순환 고리에서 놓여나 유유자적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신지승(47) 감독, 이은경(41) 피디 부부. 지난달 28일 이들이 터 잡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 자락을 찾았다. 중앙선 전철이 들어와 서울 용산역에서 1시간20분 거리지만 부부가 세속적인 영화판에 실망해 숨어든 1999년도만 해도 심심산골이었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낙엽송 울울한 숲 속에 컨테이너 상자 세개로 만든 게 집 겸 작업실이다. 집 앞 경사지엔 반원형 돌축대가 10×12m 스크린을 에워싸고 있다. 철따라 별빛·달빛 아래 그들이 만든 영화를 트는 ‘숲속극장’이다.

용문산 자락에 ‘작업실’ 꾸려
11년간 80개 마을서 60편 촬영
스태프·배우 모두 ‘주민’인 영화
‘세계마을영화축제’ 열고 상영

“우리나라 영화는 대부분 서울의 20~30대를 위한 것입니다. 획일화되었다고나 할까요. 최대 영화 인구는 2천만 정도? 나머지 4천만은 어쩌다 말고는 영화에 별 기대를 않고 삽니다.”

독립영화에 잠시 몸담았던 이들의 꿈은 4천만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야무지거나 허망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꿈은 ‘마을영화’이다. 이들이 지난 11년 동안 전국 80여개 마을을 떠돌며 찍어낸 60여편의 작품에서 추출해낸 장르다.

“사람들 얼굴이 다르듯이 마을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이 휩쓸고 지나간 황폐한 자리에 현대판 마을전설을 만들어온 거죠. 그걸 드러내 기록하는 게 제 몫입니다.” 60여편에는 새로 생긴 횡단보도, 집집이 다른 고추값, 민박-펜션의 갈등 등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동남아에서 온 새댁, 되살아나는 문경 폐광촌, 주문진 홀몸노인, 소년원의 소녀들 등 다양한 소재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살인, 폭력, 섹스 등 자극적인 것은 없다.


신지승·이은경 부부 감독
신지승·이은경 부부 감독
5t 트럭을 개조한 촬영차에 카메라와 마이크, 반사판 등 최소한의 장비를 싣고 집을 나서면 보름에서 길게는 석달을 길에서 머문다. 영화 한편 찍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두달. 일단 마을 섭외가 성사되면 보름 정도 주민들과 친해지며 동네 사정과 주민 사정을 파악한다. 토론을 거쳐 전체 이야기와 에피소드의 얼개를 잡고, 주민들한테 알맞은 역할을 맡기고 촬영에 들어간다. 어떤 이는 카메라 앞에 세우고 어떤 이한테는 ‘레디 고’를 외치게 하고 어떤 이한테는 붐마이크를 넘긴다.

“저는 얼개만 그리고 주민들이 현장에서 채워갑니다. 즉흥성을 가미한 거죠. 살아오면서 느끼고 겪은 일을 재현하는 것이니 그들의 연기와 애드리브는 아주 리얼해요. 삶의 경험이 없는 직업배우들이 진짜인 척하는 연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대신 롱테이크는 못 한다. 직업 연기자와 달리 집중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탓이다. 깔깔 배꼽잡고, 때로는 울먹이며 만든 마을영화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다큐와 픽션이 묘하게 뒤섞인다. 언뜻 중구난방 산만해 보이지만 찬찬히 음미하면 할수록 구수한 맛이 우러나온다. 숭늉 맛이랄까. 주민들 출연료? 물론 없다. 편당 제작비는 평균 2천만원. 가끔 홍보영화를 찍어주고 생긴 돈이 밑천이다.


“허접해 보이죠? 하지만 두고 보세요. 100년 뒤에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 될 겁니다.”

그의 영화는 아직 임자를 못 만나고 있다. 영화를 찍은 마을 또는 작은 마을축제에서 제한적으로 선보였을 뿐이다.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로 가득한 상업영화의 문법에 익숙한 소비자들한테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앞으로 영화계는 극단적인 상업영화와 풀뿌리영화로 이원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 점에서 어중간한 독립영화보다는 마을영화가 미래영화의 한 축이라고 본다.

무명의 설움과 좌절도 컸다. <집으로> <워낭소리>가 한때 붐을 타면서 마을사람들은 “우리 영화는 언제 극장상영 해요?”라며 따지고 때로 ‘사기꾼 감독’이라고 불렀다. 그가 애써 만들어 빛을 보게 해 놓자 다음해부터는 그를 부르지 않는 마을영화제도 여러 군데다.

부부의 꿈은 마을영화에서 영화마을로 커졌다. 지난달 31일부터 오는 8일까지 ‘2010 세계마을영화축제’를 열고 있다. 낮에는 마을 곳곳에서 영화를 찍고 저녁이 되면 오촌리 잔디공원과 연수리 숲속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밤이 이슥해지면 30여편의 영화를 튼다. <금광 속의 송아지> <고추전쟁> <가래가재 그리고 삼각김밥> 등 부부가 중심이 되어 만든 영화 외에 <작은 연못>, <우리들과 경찰아저씨의 700일전쟁>, <영도다리>, <요시노 이발관> <블러디 쉐이크> 등 극장상영작이 포함됐다. 비용은 일부 후원을 받고 나머지는 쌈짓돈과 그곳 주민들 울력이다. www.changc.com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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