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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진흙탕 뒹굴며 느끼는 ‘희망’

등록 2010-08-08 20:56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
[남다은의 환등상자] <테이킹 우드스탁>
이 모든 일은 어느 불행한, 그러나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는 한 청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네, 베델. 이곳에서 엘리엇 타이버(디미트리 마틴)는 낡은 모텔을 운영하는 부모와 산다. 누가 보아도 단 하루도 묵고 싶지 않은 이 모텔은 파산 직전이다. 엘리엇은 상황 파악을 하지 않고 고집만 부리는 부모를 대신해 모텔을 살릴 방법을 궁리한다. 그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삶의 미소를 잃은 아들의 전형이다. 옆 동네의 어른들이 우드스탁 페스티벌 개최를 거부하지 않았다면, 평생 그는 희생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때로 삶의 변화는, 혹은 위대한 축제는 폭발하지 못하고 맴돌던 에너지와 약간의 우연, 그리고 직관에 따른 무모함이 만든다. 한 푼이 아쉬웠던 엘리엇은 장소를 잃은 우드스탁 페스티벌 기획자들에게 베델의 목장을 추천한다. 하루아침에 엘리엇의 모텔은 축제의 숙소가 되어 파산을 막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다.

그렇다. 자유로운 히피들의 거대한 축제가 이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된 데에는 그 뒤에 막대한 자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은 돈이 필요했고, 한쪽은 그걸 축제로 승화(?)시킬 장소가 필요했다. 축제가 끝난 뒤 인파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도 해결되지 않은 돈 문제와 진흙 언덕을 뒤덮은 쓰레기들이다. 영화는 그 사실을 감출 생각이 없다. 차라리 그걸 노골적으로 보여준 다음, 3일간의 평화, 아름다움, 자유를 마음껏 펼쳐낸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이. 똑바로 봐, 이건, 유토피아도, 낭만도, 기적도 아닌 현실이야. 현실이 품고 있던, 현실이 이룩해낼 수 있는 순간들이라고. 이 시대, 우리에게 가능한 축제는 그저 자본의 축제일 뿐이라거나, 이제 더 이상 히피정신은 불가능하다고 자조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환상이 아니라, 희망을 준다. 우리가 어느덧 너무도 하찮게 다루는 이 단어, ‘희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니, 다시 생각해야만 할 때가 아니냐고 묻는다.

예상과 달리 <테이킹 우드스탁>은 위대한 뮤지션들의 공연 장면에 헌사를 바치는 영화가 아니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전쟁터의 세계를 놀이터로 바꿀 줄 아는 영혼들, 경직되고 엄숙한 세대를 약 냄새와 맨몸의 가벼움으로 유혹할 줄 아는 세대들, 총이 있던 자리에 꽃을 꽂을 줄 아는 자들에게 애정을 고백하는 영화다. 축제의 구경꾼이던 엘리엇은 점차 그들과 함께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취하면서 생의 결을 느낀다. 그는 미래가 보이는 곳에서 불행을 견디는 것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 길을 택한다. 모두가 엘리엇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축제는 공허감을 남기고, 돌아온 일상은 제자리이며, 세상은 여전히 완고할 확률이 크다. 그래도 영화를 보며 그 시대, 그곳의 기억을 안고 사는 자들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기란 힘들다. 그 3일이 있다면, 이후의 세상이 안긴 좌절과 허무를 냉소하지 않고도 평생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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