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미츠 오브 컨트롤’
새 영화 ‘리미츠 오브 컨트롤’
스페인 길 떠나는 킬러의 여정 속 드러나는 생의 의미
이삭 드 번콜 등 단골 배우 출연…몽환적 영상 탁월 <천국보다 낯선>으로 우리한테 낯설지 않은 짐 자무시 감독의 새 영화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감상법을 달리해야 한다. 두 시간 가까이 지속되는 영화는 주인공 킬러가 낯선 남자한테 모종의 지령을 받고 마드리드 공항에서 스페인 남부 세비야로 이동하는 여정을 그렸다. 두 시간 가까운 영화는 8배속으로 돌려 15분 분량으로 압축해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구조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 하는 사이에 본질을 놓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컷과 컷,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 또는 그 너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도드라진 것은 줄거리보다는 인물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킬러로 나오는 이삭 드 번콜은 <지상의 밤> <고스트 독> <커피와 담배>에 이어 네번째 자무시의 영화에 캐스팅됐다. 이야기의 축인 그의 껑충한 키, 부리부리한 눈과 뻘쭘한 콧구멍 등 장승처럼 생긴 생김새는 꿈같은 현실이 지속되는 영화 분위기에 앞선다. ‘복서’가 그려진 성냥갑으로 킬러한테 다음 접선 대상과 장소를 알려주면서 연결고리가 되는 등장인물들도 전형성으로 존재한다. ‘블론디’(틸다 스윈턴)는 좋은 영화란 희미한 꿈처럼 남는 것이라 하고, ‘일본인 여성’(유키 구도)은 우리 모두는 무아지경으로 회전하는 분자덩어리라는 지론을 밑도 끝도 없이 킬러한테 전한다. 이들 배우는 <브로큰 플라워>, <미스터리 트레인> 등 자무시 감독의 전작에 출연해 각별한 느낌을 각인시킨 바 있으며, 감독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이번 영화의 각본을 썼다고 한다. 인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스페인 풍광.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마드리드 공항, 원기둥의 조합으로 이뤄진 한 호텔, 피카소 작품이 잔뜩 걸린 국립레이나소피아미술관, 그라피티가 얼룩진 뒷골목의 카페 등 마드리드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올리브나무가 심어진 과수원, 덤불나무가 점처럼 찍힌 민둥산 등 세비야로 가는 기찻길 주변의 풍광 역시 이국적이다. 특히 아파트의 세심하게 조각된 발코니나 계단의 타일 문양, 그리고 단순명료하게 디자인된 가구 등이 설핏 지나가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또 까다로운 손님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손님은 왕이죠”라고 빈정대는 카페 직원, “아저씨는 미국 깡패 아니냐”며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 등 감독의 눈에 비친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이 주관적으로 드러난다. 감독의 뚜렷한 주관을 상징하듯, 영화에는 창문, 액자 등 사각형 틀이 유난히 많다. 등장인물은 흔히 창문 너머로 보이고 등장인물의 눈에 비친 풍광은 창문 너머로 잡히기 일쑤다. 호텔 창문 너머로 본 도시의 모습이 미술관에 걸린 도시사진과 임무교대하는 것이나 입체파 화가의 바이올린 그림 다음에 실제 바이올린 맨이, 누드그림 뒤에 벌거벗은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상상과 현실이 교호하는 자무시 감독의 심상을 드러내는 듯하다. 시간 역시 재밌는 요릿감. 에피소드들은 일상 속도이지만 그 사이사이, 즉 비행기, 자동차, 기차 속에서의 시간은 차창에 비치는 풍광의 변화로 흘러가고, 등장인물과 만나기 전후 주인공의 밤낮은 구름 그림자처럼 지나가버린다. 아름다운 퍼즐그림으로 그치면 자무시의 진면목이 아닐 터. 주인공 킬러는 항상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해 마시고, 만나고 떠남을 반복하는 인물들은 성냥갑을 명함처럼 주고 간다. 그 장면들은 독특함으로 인해, 반복되어 아름다운 선율이 되는 테마음악과 같은 구실을 한다. 같은 논리로 등장인물들이 독백처럼 생뚱한 말을 하고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변주. 이 같은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이 가능한 것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몫이 크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그는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에서 왕자웨이(왕가위) 감독과 함께 작업하며 이름값을 얻어 각 나라 거장 감독의 구애를 받고 있다. 정작 에피소드 너머 메시지는 무엇인가. 삶은 곧 여행. 여정은 하룻밤 숙소의 열쇠로 상징되고, 일상은 에스프레소 커피나 성냥갑 속 암호처럼 반복되지만 늘 새로운 사건들이 행운처럼 다가오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물론 어떤 색의 안경을 쓰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12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이삭 드 번콜 등 단골 배우 출연…몽환적 영상 탁월 <천국보다 낯선>으로 우리한테 낯설지 않은 짐 자무시 감독의 새 영화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감상법을 달리해야 한다. 두 시간 가까이 지속되는 영화는 주인공 킬러가 낯선 남자한테 모종의 지령을 받고 마드리드 공항에서 스페인 남부 세비야로 이동하는 여정을 그렸다. 두 시간 가까운 영화는 8배속으로 돌려 15분 분량으로 압축해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구조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 하는 사이에 본질을 놓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컷과 컷,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 또는 그 너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도드라진 것은 줄거리보다는 인물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킬러로 나오는 이삭 드 번콜은 <지상의 밤> <고스트 독> <커피와 담배>에 이어 네번째 자무시의 영화에 캐스팅됐다. 이야기의 축인 그의 껑충한 키, 부리부리한 눈과 뻘쭘한 콧구멍 등 장승처럼 생긴 생김새는 꿈같은 현실이 지속되는 영화 분위기에 앞선다. ‘복서’가 그려진 성냥갑으로 킬러한테 다음 접선 대상과 장소를 알려주면서 연결고리가 되는 등장인물들도 전형성으로 존재한다. ‘블론디’(틸다 스윈턴)는 좋은 영화란 희미한 꿈처럼 남는 것이라 하고, ‘일본인 여성’(유키 구도)은 우리 모두는 무아지경으로 회전하는 분자덩어리라는 지론을 밑도 끝도 없이 킬러한테 전한다. 이들 배우는 <브로큰 플라워>, <미스터리 트레인> 등 자무시 감독의 전작에 출연해 각별한 느낌을 각인시킨 바 있으며, 감독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이번 영화의 각본을 썼다고 한다. 인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스페인 풍광.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마드리드 공항, 원기둥의 조합으로 이뤄진 한 호텔, 피카소 작품이 잔뜩 걸린 국립레이나소피아미술관, 그라피티가 얼룩진 뒷골목의 카페 등 마드리드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올리브나무가 심어진 과수원, 덤불나무가 점처럼 찍힌 민둥산 등 세비야로 가는 기찻길 주변의 풍광 역시 이국적이다. 특히 아파트의 세심하게 조각된 발코니나 계단의 타일 문양, 그리고 단순명료하게 디자인된 가구 등이 설핏 지나가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또 까다로운 손님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손님은 왕이죠”라고 빈정대는 카페 직원, “아저씨는 미국 깡패 아니냐”며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 등 감독의 눈에 비친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이 주관적으로 드러난다. 감독의 뚜렷한 주관을 상징하듯, 영화에는 창문, 액자 등 사각형 틀이 유난히 많다. 등장인물은 흔히 창문 너머로 보이고 등장인물의 눈에 비친 풍광은 창문 너머로 잡히기 일쑤다. 호텔 창문 너머로 본 도시의 모습이 미술관에 걸린 도시사진과 임무교대하는 것이나 입체파 화가의 바이올린 그림 다음에 실제 바이올린 맨이, 누드그림 뒤에 벌거벗은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상상과 현실이 교호하는 자무시 감독의 심상을 드러내는 듯하다. 시간 역시 재밌는 요릿감. 에피소드들은 일상 속도이지만 그 사이사이, 즉 비행기, 자동차, 기차 속에서의 시간은 차창에 비치는 풍광의 변화로 흘러가고, 등장인물과 만나기 전후 주인공의 밤낮은 구름 그림자처럼 지나가버린다. 아름다운 퍼즐그림으로 그치면 자무시의 진면목이 아닐 터. 주인공 킬러는 항상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해 마시고, 만나고 떠남을 반복하는 인물들은 성냥갑을 명함처럼 주고 간다. 그 장면들은 독특함으로 인해, 반복되어 아름다운 선율이 되는 테마음악과 같은 구실을 한다. 같은 논리로 등장인물들이 독백처럼 생뚱한 말을 하고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변주. 이 같은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이 가능한 것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몫이 크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그는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에서 왕자웨이(왕가위) 감독과 함께 작업하며 이름값을 얻어 각 나라 거장 감독의 구애를 받고 있다. 정작 에피소드 너머 메시지는 무엇인가. 삶은 곧 여행. 여정은 하룻밤 숙소의 열쇠로 상징되고, 일상은 에스프레소 커피나 성냥갑 속 암호처럼 반복되지만 늘 새로운 사건들이 행운처럼 다가오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물론 어떤 색의 안경을 쓰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12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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