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영화제 지역별 현황
‘좌파영화제 손보기’ 논란 속 ‘구조조정기’
예산지원 갈려 명암…제천영화제도 위기
예산지원 갈려 명암…제천영화제도 위기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로 활짝 열린 우리나라 국제영화제의 역사는 이제 겨우 15년밖에 안 됐다. 하지만 국제영화제는 그사이 무려 20개가 더 생겼다. 일반 영화제까지 포함하면 72개에 이른다. 1주일에 1개가 넘는 꼴이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소규모 영화제까지 합치면 수백개로 추정된다.
일대 붐을 이루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영화제들이 구조조정기에 접어들었다. 사라지거나 명맥만 가까스로 유지하는 영화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음악영화로 특화해 호평을 받아온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존폐 위기에 섰고, 4회째를 맞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예산과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너도나도 영화제를 만들었던 지자체들이 최근 지원을 중단하거나 줄이면서 많은 영화제들이 기로에 설 전망이다.
■ 충주호의 낭만, 사라지나 ‘좌파영화제 손보기’ 논란 속에 부산·전주·부천 등 6대 국제영화제의 국고지원이 각각 5000만~3억원씩 삭감될 때 유독 제천국제음악영화제만은 지난해 2억5000만원 지원이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6·2 지방선거를 즈음해 갑자기 존폐론이 불거졌다. 영화제를 만든 엄태영 전 시장에 이어 당선된 최명현 새 시장은 올해 영화제를 마친 뒤 존폐 여부를 냉정하게 따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예산에 견줘 홍보효과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제천시 축제영상팀 담당자는 “새 시장이 출마 과정에서 ‘영화제가 왜 필요하냐, 별로 실익이 없지 않으냐’는 시민 여론을 들었다. 그래서 검토해보겠다는 것이지, 바로 폐지하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005년 음악영화와 공연을 함께 즐기는 콘셉트로 시작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지난해 35개국 90여편, 음악공연 30회로 규모가 첫회보다 두배 넘게 커졌고, 관람 인원도 5만명에서 13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세명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영화제를 찾아 이들이 쓴 비용은 36억여원에 달한다. 제천영화제 관계자는 “경제 효과도 나쁘지 않지만 영화제의 문화적 효과를 왜 생각하지 않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 지원 따라 운명 갈리는 영화제들 2005년 시작한 고양어린이국제영화제는 2회 이후 폐지됐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 가장 특화된 영화제로 인정받았지만 고양시 의회에서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문을 닫았다. 민간 주도로 온·오프라인을 모두 잘 아우르는 특색 있는 영화제란 평을 받았던 서울국제영화제(SENEF)도 9회 열린 끝에 지난해 사라졌다. 한 영화계 인사는 “문화부 지원을 받으며 국제영화제로 키워나가려고 했지만 정권 교체 뒤 지원이 끊기면서 없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07년 예산 40억원 전액을 중구청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올해 구청장이 바뀌고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새 구청장 당선자 박형상씨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혼란을 겪고 있다. 행사는 예년 수준을 거의 유지하기로 했지만 영화제 예산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게 됐다.
반면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는 잘나가고 있다. 1회 대회 국고 5억원을 지원받아 시작해 이듬해와 지난해 7억원 정부 지원을 받았다. 영화계는 조직위원 21명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 5명이 들어간 것이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냐고 보고 있다. 이계경·정두언 의원이 공동조직위원장, 이성헌·서상기·김금래 의원이 조직위원이다. 국내 6대 영화제 이외의 영화제로 정부지원을 따낸 영화제는 올해 4회에 불과한 가족영상축제와 7회째인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 담당자는 “국제적 인지도와 성과 등을 고려해 지원 여부와 액수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 이후 홍건표 시장과의 마찰로 최대 위기를 맞았던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는 올해 김만수 새 시장이 당선되면서 다시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 시장은 영화제를 더 성장시키겠다는 입장이다.
■ 자생 활로를 찾아라 드물지만 정부 지원이 끊기고도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온 영화제도 있다. 올해로 10년이 되는 광주국제영화제는 2005년 이후 광주시와 국가의 지원이 끊겼지만 시민들의 후원과 봉사를 바탕으로 예산을 10분의 1 수준 미만인 1억5000만원까지 줄여가면서 행사를 치러왔다. 난립하고 있는 영화제의 구조조정은 자연적인 옥석 가리기보다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되는 양상이다. 허욱 용인대 교수(영상영화학과)는 “지역 특성이나 영화제에 대한 적절한 인식 없이 업적 만들기 식으로 영화제가 생기다 보니 차별성 없이 중복되는 영화제가 생겨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결국 “정치적 의견과 무관하게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만들고, 문화재단 등이 나서서 영화제를 지원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허 교수는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 자생 활로를 찾아라 드물지만 정부 지원이 끊기고도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온 영화제도 있다. 올해로 10년이 되는 광주국제영화제는 2005년 이후 광주시와 국가의 지원이 끊겼지만 시민들의 후원과 봉사를 바탕으로 예산을 10분의 1 수준 미만인 1억5000만원까지 줄여가면서 행사를 치러왔다. 난립하고 있는 영화제의 구조조정은 자연적인 옥석 가리기보다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되는 양상이다. 허욱 용인대 교수(영상영화학과)는 “지역 특성이나 영화제에 대한 적절한 인식 없이 업적 만들기 식으로 영화제가 생기다 보니 차별성 없이 중복되는 영화제가 생겨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결국 “정치적 의견과 무관하게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만들고, 문화재단 등이 나서서 영화제를 지원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허 교수는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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