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골든 슬럼버’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골든 슬럼버’
권력이 ‘만들어낸’ 범인 이미지
끈끈한 관계로 바로잡는 과정 이사카 고타로와 3번째 협업
원작 행간까지 읽는 ‘찰떡 궁합’ 이렇게 말해도 될까. 영화 <골든 슬럼버>에 반했다.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도 좋고 같은 또래인 원작 소설가 이사카 고타로도 마음에 든다. 나카무라 감독이 베스트셀러 제조기 이사카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2008), <피쉬스토리>(2009)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지금까지 영화화한 이사카의 작품이 여덟 편임을 고려하면 이들 사이는 우정을 넘어선다. 500쪽 넘는 분량의 장편소설을 두 시간으로 압축해 원작의 행간까지 영상으로 구현해낸 연출력은 원작자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할 정도다. 영화는 반미 성향의 신임 일본 총리가 취임 퍼레이드 중 폭파 살해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대학 선배와의 약속으로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전직 택배기사 노총각 아오야기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총리 암살범으로 몰려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하지만 홍두깨가 아닌 것이, 경찰은 곳곳에 설치된 시시티브이에서 빼낸 화면 등 미리 준비한 증거들을 속속 내놓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한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 2년 전 아이돌 스타를 강도한테서 구출한 적이 있는 아오야기는 ‘영웅에서 암살범으로’라는 뉴스의 요건에 ‘딱’이었던 것. “한때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 있었지/ 그래, 집으로 돌아갈 길이 있었지/ 눈 감으렴! 예쁜 아기야 울지 마라/ 자장가를 불러줄게/ 금빛 졸음이 눈에 그득하구나/ 네가 잠 깨면 (정다운 사람들의) 미소가 너를 바라볼 거야.”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에 실린 노래 ‘골든 슬럼버’가 바닥에 깔리면서, 대학시절 맛집 기행 동아리 선후배들, 축제 때 도와주었던 폭죽공장 사장, 후드를 뒤집어쓴 연쇄살인범, 지하배수관 지리를 꿰는 노인 건달 등이 숨은그림들처럼 하나둘 나타나 아오야기의 수호자가 된다. 거기에 앵무새 기자들에게 아들의 결백을 호통치는 아버지까지.
모든 것의 매개는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에선 아오야기를 범인으로 기정사실화해 호들갑을 떨지만 그 뒷면에선 중화요리 양념 광고, 날씨뉴스 배경으로 나온 동물원 원숭이, 옛날 자동차 시엠송 등이 실마리가 되어 잠재된 인연을 환기시킨다. 권력과 돈의 위세에 가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관계를 지탱하는 건 수면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습관과 신뢰’가 아닌가. 이야기는 아오야기 마사하루와 그의 옛 캠퍼스커플 히구치 하루코의 시선을 오가면서 진행된다. 초콜릿을 잘라 먹어도 큰 것을 하루코한테 건넸던 아오야기. 하지만 그의 배려는 지질함으로 비쳤고 장래의 결혼생활이 ‘참 잘했어요’가 아닌 ‘잘했어요’ 수준이 될까 봐 헤어진 사이다. 이제 아오야기는 도망자 신세이고 하루코는 출장으로 바쁜 회사원 남편과 사이에 딸 하나를 둔 주부일 따름. 영화에서는 아오야기와 하루코는 단 한 차례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이심전심 끊어진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도망자-주민, 노총각-주부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과 불꽃을 함께 바라보며 첫 키스를 나눴던 기억이 뒤섞이지만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다. 훗날 다시 스치는 옛 연인에게 딸아이를 통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애초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로 다층적이고 공감각적이기는 하지만 막상 화면으로 옮겨진 모습은 참 놀랍다. ‘참 잘했어요’를 받을 만하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끈끈한 관계로 바로잡는 과정 이사카 고타로와 3번째 협업
원작 행간까지 읽는 ‘찰떡 궁합’ 이렇게 말해도 될까. 영화 <골든 슬럼버>에 반했다.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도 좋고 같은 또래인 원작 소설가 이사카 고타로도 마음에 든다. 나카무라 감독이 베스트셀러 제조기 이사카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2008), <피쉬스토리>(2009)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지금까지 영화화한 이사카의 작품이 여덟 편임을 고려하면 이들 사이는 우정을 넘어선다. 500쪽 넘는 분량의 장편소설을 두 시간으로 압축해 원작의 행간까지 영상으로 구현해낸 연출력은 원작자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할 정도다. 영화는 반미 성향의 신임 일본 총리가 취임 퍼레이드 중 폭파 살해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대학 선배와의 약속으로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전직 택배기사 노총각 아오야기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총리 암살범으로 몰려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하지만 홍두깨가 아닌 것이, 경찰은 곳곳에 설치된 시시티브이에서 빼낸 화면 등 미리 준비한 증거들을 속속 내놓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한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 2년 전 아이돌 스타를 강도한테서 구출한 적이 있는 아오야기는 ‘영웅에서 암살범으로’라는 뉴스의 요건에 ‘딱’이었던 것. “한때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 있었지/ 그래, 집으로 돌아갈 길이 있었지/ 눈 감으렴! 예쁜 아기야 울지 마라/ 자장가를 불러줄게/ 금빛 졸음이 눈에 그득하구나/ 네가 잠 깨면 (정다운 사람들의) 미소가 너를 바라볼 거야.”
영화 ‘골든 슬럼버’
모든 것의 매개는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에선 아오야기를 범인으로 기정사실화해 호들갑을 떨지만 그 뒷면에선 중화요리 양념 광고, 날씨뉴스 배경으로 나온 동물원 원숭이, 옛날 자동차 시엠송 등이 실마리가 되어 잠재된 인연을 환기시킨다. 권력과 돈의 위세에 가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관계를 지탱하는 건 수면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습관과 신뢰’가 아닌가. 이야기는 아오야기 마사하루와 그의 옛 캠퍼스커플 히구치 하루코의 시선을 오가면서 진행된다. 초콜릿을 잘라 먹어도 큰 것을 하루코한테 건넸던 아오야기. 하지만 그의 배려는 지질함으로 비쳤고 장래의 결혼생활이 ‘참 잘했어요’가 아닌 ‘잘했어요’ 수준이 될까 봐 헤어진 사이다. 이제 아오야기는 도망자 신세이고 하루코는 출장으로 바쁜 회사원 남편과 사이에 딸 하나를 둔 주부일 따름. 영화에서는 아오야기와 하루코는 단 한 차례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이심전심 끊어진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도망자-주민, 노총각-주부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과 불꽃을 함께 바라보며 첫 키스를 나눴던 기억이 뒤섞이지만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다. 훗날 다시 스치는 옛 연인에게 딸아이를 통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애초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로 다층적이고 공감각적이기는 하지만 막상 화면으로 옮겨진 모습은 참 놀랍다. ‘참 잘했어요’를 받을 만하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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