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음악가 기타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온 뉴에이지 음악가 기타로
올리버 스톤·장이머우 감독과 작업
색다른 재료·악기 변조로 소리 창조 “음악은 듣는 사람을 평화적이고 덜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뉴에이지 작곡가 겸 연주자인 기타로(57·사진)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에 왔다. 이번이 두번째 한국행인 그는 13일 제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그렇게 말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그는 1980년 일본 공영방송사 엔에이치케이의 <실크로드> 음악을 맡으며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 동양적인 정서가 깔린 실크로드 앨범은 1000만장이 팔렸으며 1987년에는 미국 25개 도시를 돌며 공연을 했다. 90년대 <만다라>, <황홀한 저녁> 등의 영화음악으로 15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올리버 스톤 감독의 <하늘과 땅>으로 골든글로브 최우수음악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실크로드 2> <둔황> <천년여왕> 등의 음악을 맡는 등 꾸준한 활동을 펼쳐왔다. 본명인 다카하시 마사노리를 두고 기타로를 새 이름으로 쓰는 것도 그의 음악관에서 비롯한다. 고교 때 동급생이 긴머리를 가진 만화 속 요괴, 기타로(鬼太郞)와 닮았대서 붙여준 별명을 같은 음의 한자 ‘喜多郞’, 곧 ‘기쁨을 가진 사내’로 바꾼 것. “나의 음악은 자연에서 온다. 소리가 나의 몸과 손가락을 통과하여 음악으로 나오지만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미국에 사는 그가 음력 8월 보름이면 일본에 돌아와 후지산 기슭에서 일몰부터 일출 때까지 12시간 동안 다이코드럼을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24년째 반복해 온 것도 그런 이유다. 그의 음원인 나무, 물, 공기를 준 땅의 신(지신)에게 감사하기 위한 제의다. 그는 “공기가 없다면 어떻게 소리가 있겠느냐”며 “지구에 산다는 것 자체가 무척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애초 그의 도구는 신시사이저. 요즘 젊은 음악가들한테는 손쉬운 작곡 도구로 전락했지만 기타로에게 신시사이저는 사운드를 창조하는 수단이었고, 작곡의 바탕이 됐다. 소리에서 출발하는 음악적 태도는 지금도 지속돼 신시사이저는 물론 기성 악기를 자기 스타일에 맞게 변조하거나 리코더의 모터를 바꿈으로써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 대나무, 쇠파이프, 강선 등 손 닿는 모든 것을 재료 삼아 스스로 악기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4피트 피아노선을 여럿 늘인 다음 작은 유리구슬을 떨어뜨려 뚱~둥둥둥 소리를 내는 것, 물 담긴 큰 프라이팬 위에 작은 프라이팬을 엎어 두들기는 것, 수반에 강철선을 삿갓 모양으로 늘여세운 다음, 가운데 둔 물병을 때림으로써 철선에 부닥치는 소리를 얻는 것 등이 그것. 그는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악기들이 자신의 작업실을 작은 박물관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기타로는 영화감독들이 영화음악가들을 부려먹는 것에 넌더리를 냈다. 할리우드에서 음악을 의뢰할 때 가편집된 디브이디와 함께 잠정적으로 만든 음악을 붙여주면서 이런 식으로 시한에 맞춰달라고 주문한다는 것. “그것도 좋은데 뭘 나한테 맡기냐”며 감독과 다투기 일쑤라는 그는 반대되는 사례로 함께 작업했던 올리버 스톤이나 장이머우 감독을 들었다. 두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함께 시작하고 음악을 오로지 자신한테 맡겼다면서 촬영 도중 자신이 건넨 테마음악을 듣고 촬영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관객의 정서는 주로 시각 이미지를 통해 환기되는데, 배경음악이 좋으면 청각 이미지로 기억하기도 한다.” 스릴러 음악을 만들 생각은 없느냐는 물음에 “제작사 쪽에서 지레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아예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다”며 “주문이 들어오면야 왜 안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제천/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색다른 재료·악기 변조로 소리 창조 “음악은 듣는 사람을 평화적이고 덜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뉴에이지 작곡가 겸 연주자인 기타로(57·사진)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에 왔다. 이번이 두번째 한국행인 그는 13일 제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그렇게 말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그는 1980년 일본 공영방송사 엔에이치케이의 <실크로드> 음악을 맡으며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 동양적인 정서가 깔린 실크로드 앨범은 1000만장이 팔렸으며 1987년에는 미국 25개 도시를 돌며 공연을 했다. 90년대 <만다라>, <황홀한 저녁> 등의 영화음악으로 15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올리버 스톤 감독의 <하늘과 땅>으로 골든글로브 최우수음악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실크로드 2> <둔황> <천년여왕> 등의 음악을 맡는 등 꾸준한 활동을 펼쳐왔다. 본명인 다카하시 마사노리를 두고 기타로를 새 이름으로 쓰는 것도 그의 음악관에서 비롯한다. 고교 때 동급생이 긴머리를 가진 만화 속 요괴, 기타로(鬼太郞)와 닮았대서 붙여준 별명을 같은 음의 한자 ‘喜多郞’, 곧 ‘기쁨을 가진 사내’로 바꾼 것. “나의 음악은 자연에서 온다. 소리가 나의 몸과 손가락을 통과하여 음악으로 나오지만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미국에 사는 그가 음력 8월 보름이면 일본에 돌아와 후지산 기슭에서 일몰부터 일출 때까지 12시간 동안 다이코드럼을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24년째 반복해 온 것도 그런 이유다. 그의 음원인 나무, 물, 공기를 준 땅의 신(지신)에게 감사하기 위한 제의다. 그는 “공기가 없다면 어떻게 소리가 있겠느냐”며 “지구에 산다는 것 자체가 무척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애초 그의 도구는 신시사이저. 요즘 젊은 음악가들한테는 손쉬운 작곡 도구로 전락했지만 기타로에게 신시사이저는 사운드를 창조하는 수단이었고, 작곡의 바탕이 됐다. 소리에서 출발하는 음악적 태도는 지금도 지속돼 신시사이저는 물론 기성 악기를 자기 스타일에 맞게 변조하거나 리코더의 모터를 바꿈으로써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 대나무, 쇠파이프, 강선 등 손 닿는 모든 것을 재료 삼아 스스로 악기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4피트 피아노선을 여럿 늘인 다음 작은 유리구슬을 떨어뜨려 뚱~둥둥둥 소리를 내는 것, 물 담긴 큰 프라이팬 위에 작은 프라이팬을 엎어 두들기는 것, 수반에 강철선을 삿갓 모양으로 늘여세운 다음, 가운데 둔 물병을 때림으로써 철선에 부닥치는 소리를 얻는 것 등이 그것. 그는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악기들이 자신의 작업실을 작은 박물관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기타로는 영화감독들이 영화음악가들을 부려먹는 것에 넌더리를 냈다. 할리우드에서 음악을 의뢰할 때 가편집된 디브이디와 함께 잠정적으로 만든 음악을 붙여주면서 이런 식으로 시한에 맞춰달라고 주문한다는 것. “그것도 좋은데 뭘 나한테 맡기냐”며 감독과 다투기 일쑤라는 그는 반대되는 사례로 함께 작업했던 올리버 스톤이나 장이머우 감독을 들었다. 두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함께 시작하고 음악을 오로지 자신한테 맡겼다면서 촬영 도중 자신이 건넨 테마음악을 듣고 촬영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관객의 정서는 주로 시각 이미지를 통해 환기되는데, 배경음악이 좋으면 청각 이미지로 기억하기도 한다.” 스릴러 음악을 만들 생각은 없느냐는 물음에 “제작사 쪽에서 지레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아예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다”며 “주문이 들어오면야 왜 안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제천/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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