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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호주 재즈 드러머의 국악 고수 찾아 ‘삼만리’

등록 2010-08-22 19:22수정 2010-08-24 10:28

다큐 영화 ‘땡큐 마스터 킴’
새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을 소개하자면 먼 길을 돌아야 한다. 이 영화는 사이먼 바커(41·위 사진 오른쪽)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재즈 드러머가 한국인 세습무 김석출(1922~2005·왼쪽) 한테 바치는 오마주다.

“소음 같지만 한번 들어보소.” 10여년 전 한 한국인이 사이먼한테 김석출의 장구 연주녹음을 들려주면서 무심코 던진 말이란다. 그 ‘소음’이 7년동안 17차례나 한국을 방문하게 된 고리가 됐다. 당시 재즈 연주의 기예를 꿰어 나름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더 이상 발전이 없어 고민할 즈음, 김석출의 연주는 그에게 어둠을 밝히는 강렬한 빛줄기였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복잡한 기교를 구사하는 즉흥연주에 충격을 받았던 것.

김석출이 도대체 누군데 그럴까? 그는 흔치 않은 세습 무당이자 장구의 대가다. 무녀인 둘째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굿판 심부름을 하다가 아홉 살에 정식 박수무당이 된 이래 평생을 무속인으로 살았다. 굿뿐 아니라 염불에도 능하며 무악에 쓰이는 날라리·장구·꽹과리 등의 즉흥 연주는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중요무형문화재 동해안 별신굿 기능 보유자(제82-1호)인 그는 무속인 사이에서 신적인 존재로 통한다. 호남 음악이 득세하는 현실에서 무당 음악이라며 천시를 받은 탓에 무형문화재 지정도 늦어졌다고 한다.

영화는 2005년 17번째 한국을 찾은 사이먼이 원광대 전통공연예술학과 김동원 교수의 안내를 받아 김석출을 찾아가는 여행담이다. 당시 김옹은 여든넷 고령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던 터. 면회 신청을 넣고 허락을 기다리는 동안 사이먼은 판소리 배일동, 강신무 정순덕, 장구 박병천, 오고무 진유림 등 숨은 고수를 찾아다니면서 한국 전통음악을 전수받는다.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기, 호흡, 음양, 도, 신명 등 바닥에 깔린 철학까지 접근하게 된다.

드디어 득 허락. 죽은 누이의 혼령을 위로하는 굿 현장에서 김석출을 만나 한수 가르침을 받는다. 마침내 해답을 얻은 사이먼은 명실공히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어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위기에 놓인 주인공이 고수를 만나 고난을 타개한다는 영웅담과 흡사하다. 한국 전통음악을 국외에 알리려는 의도는 물론이려니와 한국인한테도 훌륭한 국악교과서가 될 법하다.

감독은 젊디 젊은 오스트레일리아인 여성 에마 프란츠. 재즈 가수로 1996년 시드니 공연 때 드러머로 참여한 사이먼과 친구가 됐다. 에마가 해외 활동을 하면서 소식이 뜸하다가 8년 뒤 홍콩에서 조우해 이 영화를 찍기로 의기투합했다. 그 무렵 사이먼은 한국의 마스터를 찾는 중이었고, 에마는 음악이 나라와 민족을 넘어 문화를 잇는 언어임을 체득한 터였다.

이 영화가 데뷔작인 에마는 영화를 찍는 동안 500쪽 이상 메모를 할 만큼 공을 들였다. 기, 음양 등의 영화적 표현을 위해 지리산 달궁, 노고단을 오르기를 여러 차례. 산굽이와 운무와 바람, 그리고 거기에서 득음한 배일동씨 등을 찍어냈다.


김석출을 만나고 난 뒤 사이먼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는 이완이라고 했다. ‘가족 중 사랑하는 누군가의 부음을 받고 실신할 때처럼’. 그는 “서양음악은 정확한 박자를 기반으로 긴장상태서 연주되지만 한국음악은 이완된 상태서 자신의 호흡에 따라 관중과 호응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주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학생 때부터 이를 가르치고 체화하는 것은 아주 특별하다”고 말했다. 김석출은 사이먼을 만나고 사흘 뒤 타계했다.

제작비는 40만 호주달러. 두 사람이 공연으로 모은 돈에 친구들의 십시일반이 씨돈이 됐다. 30년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다큐페스티벌에서 김석출 다큐를 찍은 전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 피디를 만나 제작 지원을 받았다. 한국은 김 교수를 비롯한 모든 출연자들이 무보수로 나섰다. 특히 김 교수는 기획단계서부터 참여해 사이먼과 번갈아 한국음악 전반을 소개하는 내레이터 역할을 맡았다.

한국에서 한국돈으로 만들어야 할 영화가 외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꼴이다. ‘땡큐’ 사이먼, ‘땡큐’ 에마. 9월 2일 개봉. 영화를 계기로 사이먼과 한국 국악인이 ‘다오름’ 공연팀을 만들었다. 영화 개봉에 즈음해 서울 광화문 아트홀에서 30일 밤 8시에 공연을 한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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