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연애조작단’
김현석 감독 ‘시라노;연애조작단’
남녀 간 사랑이 이뤄질 확률은 휴가 때 강릉에 두고 온 일회용 라이터가 귀경한 자기의 손에 되돌아올 확률쯤 될까.
<시라노;연애조작단>은 의뢰인이 점찍은 사람과 그토록 어렵다는 사랑을 “쥐도 새도 모르게” 맺어준다는 좌충우돌 무허가 중소기업 이야기다. 리더 병훈(엄태웅)에 기획 담당 민영(박신혜), 대본 담당 철빈(박철민), 행동대원 재필(전아민) 등 직원 3명. 극단 연출가 또는 배우인 이들은 불황으로 쌓인 빚을 끄려고 극단을 잠시 접고 자신들의 장기를 활용해 돈을 벌 수 있는 연애대행사를 꾸린 것.
첫 의뢰인은 축구와 군대 이야기밖에 모르는 연애젬병 현곤(송새벽). 그가 한눈에 반한 여성은 커피전문점 직원 선아(류현경). 조작단은 선아의 주변을 정리한 다음, 현곤한테 첼로 케이스를 메워 하루 한번씩 말없이 에스프레소를 시킴으로써 얼굴을 익히게 한다. 그 뒤 엉뚱하거나 기발한 말로 시선을 끈 다음 얼짱각도 유지하기, 3초 이상 쳐다보지 않기 등으로 애를 태우고 경쟁녀로 하여금 질투심을 일으켜 데이트 약속을 잡기에 이른다. <방자전>에서 변학도와 향단으로 영화의 간을 맞췄던 송새벽과 류현경은 이곳에서 다시 감초처럼 등장한다. 둘째 손님은 펀드 매니저 상용(최다니엘). 목사의 기나긴 설교에 입을 벌린 채 졸다가 위층에서 끄덕끄덕 졸던 희중(이민정)이 뱉어낸 껌을 받아 씹으면서 사랑에 빠졌다는 남자다. 일에서 톱을 유지하기 위해 사랑을 아웃소싱한다는 것도 좀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희중이 리더 병훈의 옛 애인이라는 점. 여기서부터 ‘사랑을 모르지만 표현하는 일을 하는 남자’와 ‘사랑은 알지만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가 남자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한 여자를 둘러싸고 벌이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스카우트>(2007)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의 작품. 1994년 군 사병 시절에 쓴 시나리오 <대행업>을 매만져 16년 만에 영화로 만들었다. 모티브는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5막 시극 <시라노 드베르주라크>. 17세기 프랑스의 기사 시라노는 8촌 여동생 록산을 사랑하지만 못생긴 코 때문에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직속부하 크리스티앙도 록산을 사랑하는데 잘생겼지만 구애할 때 두 마디 이상의 말을 하지 못한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입을 통해 한밤중에 구애를 하고 감미로운 연애편지로써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결과는 크리스티앙과 록산의 결혼.
병훈-시라노, 상용-크리스티앙, 희중-록산이 일대일 대응하는 게 똑 한국판 <시라노 드베르주라크>다. 연애조작단의 사무실에 1990년 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의 프랑스 영화 <시라노> 포스터가 걸려 있고 주인공들이 그 영화를 거론하는 등 영향 관계를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재밌다. 16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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