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퀴즈왕’
장진 사단 다 모인 영화 ‘퀴즈왕’
한밤중 어두컴컴한 강변북로에서 4중 추돌사고가 난다. 신원불명의 여자가 가장 앞서 가던 차 위로 갑자기 떨어져내렸기 때문이다. 차 넉대에 튕기고 깔린 신분 미상의 연인은 숨지고, 차에 타고 있던 10명은 줄줄이 경찰서로 간다. 아들의 진로를 두고 갈등하는 부자, 노름쟁이 남편과 다투는 아내와 어린 딸, 남의 빚 대신 받아주는 해결사 콤비, 우울증 환자 모임 회원 셋이 그들이다.
경찰서에는 이미 취객이 정신줄을 놓고 있고, 폭주족 단속에 걸린 중국음식 배달원까지 가세해 아수라장이다. 숨진 여성의 신원을 확인하던 중 컴퓨터 파일에 ‘Q30’이라고 쓰인 문건을 발견한다. 퀴즈 문제다. 그것도 상금 133억원이 걸린 퀴즈쇼의 마지막 문제. 가장 어려운 서른번째 문제이기에 1년이 넘도록 우승자가 나오지 않아 상금이 이렇게 불어났다.
경찰서에 모인 온갖 사람들은 로또 당첨이나 다름없는 퀴즈문제에 매달린다. 심지어 자는 척하던 취객조차. 다만 29번째 문제까지는 자력으로 해결해야 할 터. 모두들 머리 싸매고 상식 공부에 나서고, 퀴즈쇼 현장에서 다시 모인다.
경찰서와 방송국 스튜디오를 중심 무대로 펼쳐지는 잡다한 인간 군상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마치 연극스런 분위기, 장진 스타일이다. 닫힌 공간에서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고 또 웃고 떠들고 울고 소리치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다. 큰돈 때문에 아귀다툼을 하진 않지만 역설적으로 서로 너무나 다른 그들의 공통점이 확인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김수로, 류승룡 등의 코미디가 흥미롭다. 여기에 한재석, 장영남, 류덕환, 심은경, 송영창 등의 연기도 재미있다. 임원희, 정재영, 신하균 등이 예기치 않은 곳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 자체로도 코믹하다. 장진 감독까지 직접 웃음을 참아가며 형사 역을 해냈다. 한마디로 장진 사단의 동창회 같은 영화다. 실제로 이들은 동창회처럼 의기투합해서 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순제작비 3억5000만원의 저예산으로, 장진 감독의 부탁을 받은 배우들이 거마비 정도만 받고 출연했다. 수익이 나면 나중에 배분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대사는 위트가 넘치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웃음이 터져나오지만, 코미디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느껴지는 대목은 보기에 부담스럽기도 하다. ‘여기서 웃어줘’라고 요청하는 듯한 어색함이 웃음을 반감시키는 셈이다. 마지막에 관객을 기다리는 반전도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 전반부 서서히 부풀어가는 기대감이 피식 바람빠지는 듯한 느낌이다. 16일 개봉. 15살 이상 관람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시네마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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