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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허지웅의 극장뎐] 김기덕의 제자가 낳은 개성덩어리

등록 2010-09-12 21:15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처음 선보였을 때 어떤 배급사도 이 영화를 선택하려 하지 않았다. 표현 수위가 너무 멀리 나갔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1개관 단독 개봉의 형태로 관객을 만날 뻔했던 이 영화는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을 거치면서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상영하는 곳이 너무 적다”는 불평을 들으며 출발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개봉 2주차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극장을 늘려 현재 전국 100여개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우리가 왜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칼부림 우화다. 일반적인 수준의 규율이나 교양이 미치지 않는 공간, 즉 테두리 밖의 인간들은 언제나 연민의 대상일 뿐 쉽게 구제받지 못한다. 테두리 안의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바라보며 답답하다고 말하거나 테두리 안에서만 통용되는 윤리의 기준을 들어 손가락질한다. 김복남은 테두리 밖의 여자다. 도시에서 온 혜원은 테두리 안의 여자다. 김복남은 혜원에게 손을 내밀지만 그녀는 잡지 않는다. 그래서 김복남은 자력 구제에 나선다. 그렇게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납득할 만하게’ 행동하는 여자 캐릭터가 탄생한다. 우리가 서로를 돕지 않고 산다면? 김복남이 넘쳐나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전반에 일관된 호흡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장철수 감독 개인이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작품을 온전히 통제했다는 의미인데, 순 제작비 7억원의 저예산 기획임을 고려해도(예산이 늘수록, 즉 돈 보탠 사람들이 많을수록 감독의 직권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신인 감독들은 그런 불비한 상황 안에서 어느 한구석에라도 자신의 인장을 박아 넣기 위해 수단을 강구한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는 모든 프레임에서 감독의 개성이 느껴진다. 신통한 노릇이다.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서 이와 유사한 느낌을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이제는 흥행 감독 반열에 올라선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 그리고 정식으로 개봉을 하지는 못했지만 2008년 시네마디지털영화제에 선보였던 이상우 감독의 <트로피컬>이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상업영화 문법의 매끈한 정석을 따르기보다 다소 불균질한 개성의 파형을 영화 전반에 일관되게 입히는, 신인답지 않은 박력과 통제력으로부터 발견된다. 장훈의 경우 <의형제>에 이르러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정돈되면서 ‘직업 감독’으로서 그의 희소성은 더욱 견고해졌다. <트로피컬>에서 보여준 이상우의 파격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분명 돌아올 것이고, 우리는 장철수·장훈과 함께 그를 논하게 될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김기덕의 제자들이다. 장훈은 <사마리아> <빈집> <활> <시간>에, 이상우는 <숨> <시간>에, 장철수는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에 참여했다. 이들은 예측 불허로 돌아가는 현장을 적은 예산으로 어떻게 운영하고 통제하며 끝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낼 수 있는지에 관한, 김기덕식 사교육을 수료한 자들이다. 김기덕의 선명한 개성으로부터 초래되는 장단점이 뚜렷할 것이다. 어찌됐든 그 효과는 이미 그들의 작품을 통해 입증되고 있는 중이다. 김기덕이 한국 영화에 끼친 가장 큰 순기능은 그의 제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십 수년 이후, 김기덕은 ‘이단아’가 아닌 다른 수사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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