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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돋보기로 확대한 두 로맨스, 내 이야기 아냐?

등록 2010-09-14 22:43

홍상수 새 영화 ‘옥희의 영화’
홍상수 새 영화 ‘옥희의 영화’
홍상수 새 영화 ‘옥희의 영화’
홍상수 감독이 이번에는 아차산으로 갔다. 전작 〈하하하〉에서 영화평론가와 영화감독이 청계산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지난여름 통영에 다녀온 뒷담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운데 ‘통영의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신작 〈옥희의 영화〉에서는 영화과 여학생인 옥희가 겨울날 1년 시차를 두고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와 각각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에 다녀온 이야기를 조각조각 병치하면서 ‘사랑의 차이와 순환’을 이야기한다.

알듯말듯 사랑의 차이·순환
4개 단편 기승전결식 엮어
직관에 의존 즉흥연기 묘미

젊은 남자는 아마도 같은 과 학생이고, 나이 든 남자는 그들을 가르치는 강사선생이다. 코란도를 타고 온 젊은이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고, 에스엠(SM)5를 타고 온 나이 든 이는 행동보다 말이 많다. 입구의 사슴조형물, 중간쯤의 정자를 지나치며 젊은이는 씨억씨억 말이 없지만, 나이 든 이는 ‘사는 이야기’를 갖다 붙인다. 젊은이와 나이 든 이는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머무는 시간의 차이로 인지되고, 산을 누가 얼마큼 올랐느냐로도 구별된다. 나이 든 선생은 성적 매기기의 공정함을 위해 젊은이와 헤어지라고 강요하고, 젊은이는 선생이 나만 미워한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면 관계는 이렇듯 생태적으로 정리될 터이다. 하지만 사랑에서 차이와 구별은 각각의 산행일인 12월31일과 1월1일의 그것만큼이나 클 수도, 사소할 수도 있다. 나이 든 이와 한해의 마지막 날에 기약한, “불가피한 일로 연락이 끊기면 매해 첫날 1시에 소나무 아래서 만나자”는 약속은 이듬해 첫날 젊은이와의 데이트와 겹치며 두 사람은 간발의 차이로 스친다.

영화는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 등 4개의 단편을 묶었다. 독립영화감독이자 시간강사인 진구(이선균)의 봉변(주문 외울 날)과 20대 영화과 학생 시절 진구의 사랑(키스왕), 50대 영화감독 송씨(문성근)가 사표낸 사연(폭설 후)이 화자를 달리하며 관객을 알쏭달쏭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으로 초짜 여자감독 옥희(정유미)의 독백(옥희의 영화)에 의해 화끈하게 정리된다.


홍상수 새 영화 ‘옥희의 영화’
홍상수 새 영화 ‘옥희의 영화’
작품의 본질이자 묘미는 결국 ‘홍상수’다. 홍상수는 대표적인 독립영화꾼. <옥희의 영화>는 극저예산 영화로, 4명의 현장 스태프만으로 만들어졌으며 배우 역시 홍상수라면 무보수라도 출연을 기꺼워할 3명으로 땡이다. 그런 탓에 시간강사 진구의 30대를 연기한 이선균이 20대 학생 시절로 건너뛰고, 60대 학과장이었던 문성근이 50대 시간강사로 훌쩍 건너와도 그러려니 한다. 배역이 시간을 쉽게 넘나드는 논리는 인물 사이로 확장돼, 진구와 송교수는 동일인의 과거와 현재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날그날 시나리오를 쓰고, 소주를 ‘연기의 명약’으로 삼은 것도 그렇다. 짧은 시간에 직관에 의존해 뽑아낸 영화인들의 이야기는 홍상수 자신의 것이자 배우들의 것이 아니겠는가. 촬영장의 이러한 정서는 영화관으로 그대로 옮겨와 스크린과 관객의 거리를 현저하게 줄인다. ‘이거 내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기시감을 부르는 것.

옹졸하고 뻔뻔한 남자와 이상스러울 정도로 관대한 여성의 이야기가 소주의 목넘김처럼 알싸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겹구조 탓이다. 바야흐로 가을 문턱이기도 하다. 16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스폰지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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