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영화 ‘돈 조반니’
노익장 사우라 감독의 솜씨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회
작품이 만들어진 뒷얘기 담고
두장르 오가는 방식으로 표현
노익장 사우라 감독의 솜씨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회
작품이 만들어진 뒷얘기 담고
두장르 오가는 방식으로 표현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신작 <돈 조반니>를 이런 식으로 소개하면 어떨까. “모차르트의 3대 명작 오페라 가운데 하나인 <돈 조반니>를 1만원 미만에 느껴볼 수 있는 기회. 게다가 그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뒷얘기도 함께 들려준다. 오페라 일반석이 10만원 이상이 드는 데 비하면 횡재인 셈이다.”
솔직하기는 한데 야비한 느낌이 든다. ‘좀 안다는 사람 티를 내려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정도는 봐주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이런 식으로 소개해보자. “박제된 오페라 <돈 조반니>에 살아 있는 인간의 숨결을 복원했다. 창작 당시인 18세기 말 빈(비엔나)은 프랑스혁명의 소식이 밀려오면서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과 갈망이 공존하던 궁정국가. 사교계는 고풍을 간직한 채 성적인 자유분방함에 어우러져 세기말적인 모습이다. 그런 환경에서 두 천재, 궁정악사 살리에리에 비해 자유로운 혼을 가진 음악가 모차르트와 베네치아에서 파문돼 15년 동안의 추방을 당한 시인 로렌초 다 폰테가 만나 바람둥이 카사노바를 모델로 오페라 <돈 조반니>를 새롭게 만들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미추, 노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는 모든 여성들을 사랑했던 카사노바가 두 젊은이한테 끼친 영향도 들려준다.”
또다른 소개 방식도 있다.
“스페인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이 일흔여덟 노익장을 드러낸 작품. <사냥><얼음에 얼린 박하><사촌 안젤리카>등 사회비판적인 스토리에서 음악으로 관심사를 옮겨온 그가 <피의 결혼식><카르멘>에 이어 시도한 음악과 영화의 만남이다. 유럽의 유명 오페라 가수를 동원한 <돈 조반니>의 아름다운 아리아와, 아리아에 얽힌 바람둥이 카사노바와 그를 스승으로 모셨던 로렌초 다 폰테와 모차르트의 숨결을 교직했다. 카사노바가 두 젊은이한테 영향을 주고 그것은 아리아의 대사와 곡이 되어 무대로 옮겨진다. 두 장르를 오가는 게 불가피한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아리아의 리허설 또는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와 지휘자의 자리 또는 객석에 앉은 인물들을 교대로 비추거나, 지금의 영사실쯤에 카메라를 두고 관객의 움직임과 대화를 촬영하다가 초점과 조명을 확 바꾸어 무대의 아리아를 보여준다거나, 극장 밖 거리에 아리아가 울려퍼지게 하는 방식으로 두 장르를 순차, 또는 동시로 보여준다. 당시의 거리나 골목길, 극장 내부 등을 오페라의 세트처럼 만들어 영화 자체가 또다른 오페라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쯤이면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전작을 보았거나 영화의 기법에 관심을 가질 정도의 마니아를 위한 소개로 적절해 보인다. 일반 독자한테는 불필요할 법하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 “스페인 영화 수준이 왜 이래? 싸구려 세트를 썼구만” 하고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구실은 하지 싶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혹. 당시 빈, 또는 베네치아의 모습을 재현하려면 세트를 만들든 컴퓨터그래픽을 쓰든 큰 비용이 드니 이를 아낄 겸 트릭 수준의 기법으로 쓴 것을 아예 영화적으로 승화시킨 게 아닐까. 비용 줄이고 실리 챙기는 일거양득 효과?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밤새 소개방식을 고민하다 결국 기사는 이꼴이 되고 말았다. 유럽, 그것도 18세기 말, 오페라에 관한 영화인 만큼 여러 겹의 껍질과 장치를 가지고 있는 탓이다. 영화는 사전지식을 갖고 보면 훨씬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지금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옛 버전이 있었다거나, 바람둥이 로렌초한테 구원의 여인 아네타가 있었다거나 하는 얘기는 역사적인 사실인지, 카를로스 감독의 영화적 창작인지 정말 모르겠다. 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귀띔해 달라. 14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프리비전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