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 프럼 어스>
악명 높은 <맨 프럼 어스>가 뒤늦게 국내 개봉한다. 일종의 유전적 변이로 선사시대부터 지금껏 살아 있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늙지 않는다는 것이 주변에 눈치채이지 않도록 10년을 주기로 이사를 다니며 새 삶을 거듭해 왔다. 어느 날 밤, 이삿짐을 챙기던 남자 앞에 그가 귀띔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한 동료 교수들이 방문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남자는 동료 교수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동료 교수들은 불쾌해하거나 신기해한다. 이 동료 캐릭터들이 극 안에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관객의 입장과 궁금증을 대변하는 이 효과적인 인물들은 자신의 전공분야에 어울리는 질문을 쏟아붓고, 남자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영화가 정말 흥미로워지는 건 남자가 예언자들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남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붓다의 제자였고 이후 그 교리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탄생에 기여했다.(무슨 기여를 했는지는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이후 영화는 기독교의 신성을 하나씩 논박하는 방향으로 완벽하게 선회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문답들이 그리 신선한 건 아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자주 들어보았을 이야기,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와 이전 세기 예언자 신화의 유사성을 통해 예수 탄생과 동방 박사와 열두명의 제자, 오병이어의 기적, 십자가 죽음, 사흘 만에 부활, 승천과 같은 이야기들이 셀 수 없이 반복 인용되어온 상징에 불과하다는 내용들이다. 이를 통해 남자는 기독교가 초기의 정신과는 달리 권력화되는 과정에서 예수의 삶을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온갖 명제와 증명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정작 남자가 영원히 살고 있다는 설정 자체를 설명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기독교의 미신적인 측면을 논박하고 실증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소비한다. 여기서 <맨 프럼 어스>의 전략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성서가 신의 뜻을 아무런 오류 없이 드러낸 하느님의 말씀이며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판단 근거라는 성서 복음주의를 기독교 주류 교리로 은연중에 전제한다. 성서라는 텍스트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영화 속의 교인 캐릭터가 히스테리컬해질 때마다 영화는 자연히 더 많은 동력을 얻게 된다. 이 영화는 결코 질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대의 파나소닉 디지털 캠코더로 찍은 이 에스에프(SF)영화는 단 한 번의 특수효과도, 화려한 배우도 없이 연극을 방불케 하는 대화와 캐릭터만으로 승부한다. 그럼에도 이 분야의 고전이 될 만큼 충분한 깊이와 꽉 짜인 구성의 묘를 드러낸다.
<맨 프럼 어스>의 각본은 일평생 <환상특급> <스타트렉> 등의 에스에프시리즈에서 작업했던 제롬 빅스비에 의해 쓰여졌다. 그는 1960년대에 처음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당시 이런 이야기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각본은 1998년 4월에 완성됐다. 제롬 빅스비는 이 세상에 더 할 말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침대 위에서 죽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그로부터 9년 후에야 만들어질 수 있었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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